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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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7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른함을 달랠겸 교정 산책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하고 등뒤에서 부르는소리가 났다. 돌아다보니 3학년 보통과의 영이와 숙희다. 상담을 하고 싶다기에 우리는 잔디를 찾아 나란히 앉았다.
숙희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대학가는거 단념하려고해요. 대학가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것 같아요. 형편도 그렇고 직장을 갖고싶어요. 어떤 분야가 좋은지요. 영문속기가 유망하다고 들어서 방학때 서울의 학원에 나가 실기를 배우고 싶은데…선생님, 좋은 말씀해주세요.』
영이도 같은 생각에서 의논끝에 찾아왔단다.
이런 상담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처음엔 약간 당황했다. 두 학생 모두 당연히 대학에 진학할 걸로 생각했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숙희는 2학년때 학년석차가 5위이내였고 영이도 10위이내에 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다. 학력고사점수가 내신성적과 함께 고득점으로 나올 확률이 높은 학생들 치고 취직하겠다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진로문제는 즉흥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니 한번 더 신중히 생각해보라고 충고하자 두학생은 벌써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면서 자신들의 뜻을 더욱 굳힌다.
모두가 대학, 대학하며 몰려가는 사회풍토에 신물이 나며 실력만 있으면 낮은 학력도 발붙일수 있는 제도가 아쉽다는 등 도전적(?)인 열변까지 토해낼땐 그들의 성장과함께 또다른가치관을 엿보는것 같아 긴말을 하지않았다.
진학할줄 몰라서 안하는 그들이라고 보지 않기에 긴 안목에서 살줄아는 현명한 인격자가 되도록 잘 이끌어주는게 내임무라고 확인해보면서, 간판·학력·지능적인 변태과외가 도사린 현실사회에서 영이와 숙희같은 전국의 친우들에게 성실한 진로지도와 신나는정책이 함께 열리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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