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도 낭만이 되나요

중앙일보

입력

[사진 tvN]

또 불륜극이다. 지난해 12월 1일 방영을 시작한 TV 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tvN) 말이다. 시청자들이 칠색 팔색을 해도 TV 드라마의 변함없는 탐구 영역처럼 불륜극은 나오고 또 나온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너질 때, 결혼이라는 이성적인 약속을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난 겨울, 불륜의 생채기가 아무는 과정을 집요하게 들여다봤던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2013~2014, SBS)에 이어 ‘일리 있는 사랑’은 불륜의 어떤 모습을 그리는 걸까.

제작진은 ‘일리 있는 사랑’의 줄거리를 이렇게 소개한다. ‘결혼 후 찾아온 첫사랑. 아내가 사랑에 빠졌다.’ ‘아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남편 입장에서 하는 말 같은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걸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저 대책 없는 낭만성이라니! 그런데 이 부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낭만성을 아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장희태(엄태웅)와 김일리(이시영) 부부는 14년 전, 임시 교사와 여고생으로 만났다. 그때 일리는 안드로메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학교 뒷산에서 UFO를 기다리고, 자기만의 아지트에서 공책 가득 희태 얼굴을 그리고, 희태를 지켜주겠다며 그 곁을 맴돌던 소녀. 그 사랑은 수줍지만 당돌하게 희태의 마음을 건드렸다. 하지만 희태가 자동차에 치이려는 찰나, 일리는 몸을 던져 희태를 구했고, 그 사고로 두 사람은 한동안 헤어진다. 7년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로부터 다시 7년이 흐른 시점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희태에게 일리는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고맙고도 죄스러운 은인이다. 14년 전 자기 대신 당한 교통사고 때문에 대학도 포기하고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일리. 결혼한 뒤에도 일리는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시누이 희수(최여진)를 비롯해 부유하지만 바람 잘 날 없는 희태의 가족을 정성으로 돌본다. 그는 더 이상 선생님에 대한 사랑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녀가 아니다. 결혼의 책임감으로 가득 찬 유부녀다. 그런 일리에게 희태는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들키지만 말라고 말하는 너그러운 남편. 그 말이 씨가 된 걸까. 일리 앞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페인트공인 일리가 일하며 만난 목수 김준(이수혁)은 희태와 다르다. 그는 일리가 챙겨줘야 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이미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한 남자다. 그는 일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 MBC)을 썼던 김도우 작가와 ‘연애시대’(2006, SBS)를 연출했던 한지승 감독은 이 불륜극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천방지축 여고생에서 마음에 멍이 든 7년차 주부 일리를 완벽하게 연기하는 이시영이야말로 이 불륜극을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김준과 나누던 장난스러운 감정이 사랑임을 직감한 일리가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보며 과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사랑 앞에 준비란 걸 할 수 있을까 망연자실했다. 늘 용감했던 일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글=진명현.
새벽에 노트북으로 드라마 다운받아 보는 남자. 낮에는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장. 사람들이 악역이라 부르는 캐릭터에 곧잘 애잔함을 느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