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부부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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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인이 되어 해로하고 있는 부부의 모습은 평안한 기쁨일 수 있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은 고독을 느껴 보지 않은 한 부부의 가슴에는 한 지붕밑에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보다는 불만과 서운하고 아쉬운 감정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운 정은 잊을 수 있어도 미운 정은 잊을 수 없다고 하거늘 이 미운 정을 키워 가면서 부부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내 어린 기억의 어머니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여자들이 흔히 하는 소리처럼 「아이들 때문에」란 구실로 묶여 있는 부부처럼 그렇게 재미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 적이 많았었다.
남편에 대한 야속하고 섭섭한 심사를 몇 해 전까지도 맏딸인 내게 친구에게처럼 푸념섞인 얘기를 하신 적이 가끔 있으셨으니까.
그러나 작년 여름, 어머니께서 이민간 동생들을 보기 위해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엘 가셨다.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일찍 귀국해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리셨고 잡수시라고 갖다드린 밑반찬과 간식은 나중에 같이 드시겠다며 잘 보관해 두시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편찮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한 마음을 감추며 애써 돌아앉으실 때 꾸부정한 등 언저리에서 흘러내리던 아버님의 그 쓸쓸한 그림자. 자식들을 떠나 보내고 보고싶은 마음으로 한꺼번에 늙어버리신 어머니셨지만 아이들과 의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영감님 곁으로 날아오고 싶어하던 마음.
이 모든 것은 밉게 든 부부의 정을 더욱 실감있게 느끼게 해 주었다.
반려의 길을 걸어온 긴 세월에서 자신이 행복하였다거나 좋은 동반자였다고 말할 수 없었던 까닭은 지금까지 부대끼며 살아온 생의 의미와 사랑의 깊이가 겉으로 만져지거나 선명한 색깔로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처럼 눈에 띄는 사랑의 깊이는 없었지만 노인들의 가슴에 서로 믿고 기대고 의지했던 사랑의 흔적들은 동면에서 깨어나는 개구리처럼 나를 눈뜨게 해주었다.
흔히 젊은이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노안에 가득한 주름, 그 속에서 조용히 숨쉬고 있는 사랑이 더 진실하게 와 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울 강남구 반포 2동 한신 2차아파트 111동 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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