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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한가위특집] 꽃미남 강동원,'형사'서 슬픈눈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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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름한 얼굴에 늘씬한 몸매. 배우 강동원(25)에게 가장 흔한 수사는 "순정만화에서 걸어나온 꽃미남"이다. 연기자에게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이 양날 검을 그는 기꺼이 약으로 휘둘렀다. 추석 대목을 겨냥해 극장가에 걸린 이명세 감독의 '형사'는 그의 꽃미남 이미지에 화룡점정을 하는 듯한 영화다.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연결된 화면들이 유독 그의 눈빛을 비출 때면 호흡을 늦추고, 여느 무협영화보다 한 톤 높은 칼소리도 그가 드물게 입을 열 때면 부드러운 저음에 자리를 내준다. 선머슴 같은 여포교 남순(하지원)을 가슴 설레게 하는 이 배역은 이름마저도 신비스런 '슬픈눈'이다. 실명제 시대에 역행하는 이 이름에 갇혀 이 배우가 혹 갑갑증을 앓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너무 앞서간 걱정이었다.

"꽃미남이요? 들으면 기분 좋죠. 사실 저는 선이 곱다거나 하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자꾸 들으니까 주입식 교육이 됐어요. 잘 되라고들 하는 말인 줄로 알고 좋게 생각해요."

전인교육으로 유명한 경남 거창고를 나온 그가 '주입식 교육' 운운할 정도면 꽃미남 소리가 귀에 못박히고도 남는 모양이다. 내친 김에 선이 고운 남자를 두고 뒤에서 농담처럼 할 법할 얘기도 먼저 입에 올린다. "슬픈눈이 왜 '슬픈' 눈이 됐을까. 장난삼아 감독님하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려서 부모한테 버림받고 병조판서(송영창) 손에 암살자로 키워지면서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버리게 됐을 거라고, 병판이 변태라서 예쁘장한 남자아이한테 못할 짓까지 했을지도 모른다고요."

'형사' 촬영을 앞두고 그는 탱고와 현대무용을 6개월쯤 익혔다. 덕분에 모든 액션 장면을 대역없이 찍었고, 그중에도 병판의 생일날 혼자 추는 검무는 그 자신이 꼽는 최고의 장면이다.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대사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가 참 재밌었다"는 소감이다. 남순에 대한 슬픈눈의 감정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평을 전했더니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장터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묘한 감정을 느끼죠. 여자가 자기랑 맞서 싸우려는데 호기심도 생기고, 얼굴도 보고 싶고. 그러다 골목길 대결에서 남순의 옷이 잘렸는데, 그때 처음으로 여자 속살을 본 거거든요. 저는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라고 생각하고 찍었어요. 관객들과 당연히 쉽게 호흡할 줄 알았죠. 근데 남자 관객들이 더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여자들과 감수성이 달라서인지."

'형사'는 시나리오를 받아본 그날로 "필(feel)이 와서"출연을 결정했단다. 인물의 캐릭터 분석이나 연기의 초점을 말할 때도 그는 유독 '느낌'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원래 모델을 했던 경험이 "한 가지 느낌을 꾸준히 지속하는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외모에 방점이 찍히는 배우라면 연기력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사실 그는 도회적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지난해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순박한 농촌 약사 역할을 그럴듯하게 해냈다. 그 얘기가 나오자 대화에 열이 오른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사이에 끼어서 그렇지 120만 관객이 넘었다"는 반박으로 애정을 과시했다. 어쨌거나 기자가 에둘러 물으려던 질문에는 "저도 연기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응수했다.

스스로 "아주 낙천적"이라고 전하는 성격대로, 여간한 질문에는 그의 느긋한 말투가 쉽게 빨라지지 않았다. 부산 출신이라 사투리 억양이 남아있는 것도, 한쪽 눈만 쌍꺼풀이 있는 짝눈인 것도 미리 털어놓는 걸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콤플렉스로 보기 어렵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던 이력은 '형사'를 계기로 영화에 크게 기울었다. "TV와 영화가 똑같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영화가 훨씬 매력 있죠. 장르도 여러 가지고, 준비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고교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생활 초기에 모델로 데뷔해 그의 타향살이는 어느덧 10년째다. 연휴가 짧기도 하려니와 빼곡한 무대인사 일정으로 이미 전국을 한바퀴 돈 그는 올해도 서울에서 명절을 쇤다. 한 편의 영화가 숱한 스태프의 피땀으로 만들어지듯, "맛있는 것 많이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면서 추석을 쇠겠다"고 덕담을 했다.

글=이후남 기자<hoona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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