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씨앗의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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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 지구 위에는 25만종에 가까운 고등식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인간이 식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겨우 1백종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양가가 별로 없다고해서, 맛이 없다고 해서 그리고 독성이 있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둔 식물가운데는, 그 품종을 개량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값진 식량이 될 수 있는 식물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품종까지 가지 않더라도 식성을 바꾸기만 하면 금새 먹을수 있는 식물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널려 있는 것이지요. 서구사람들의 주식처럼 되어있는 감자도, 그들이 그것을 먹기 시작한 것은 근세에 들어와서 부터입니다.
씀바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쓴맛의 식물까지도 우리선조들은 내버리지 않고, 기호식품으로 이용해왔던 것입니다. 서양사람들은 씀바귀나 쑥은 물론이고 달래·냉이, 그리고 바닷속에 있는 풀들인 김·미역같은 것도 사람이 먹을수 있는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원수쪽의 핵탄이 아니라 기아의 폭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인데 그 위에서 살고있는 인간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혹심한 식량난이 닥쳐올 것은 너무나도 뻔하고 슬픈 산술이지요.
그래서 지금 미·소는 핵경쟁만이 아니라「씨앗」경쟁도 치열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야채·곡물·과실의 품종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씨앗의 수집이 절대적인 까닭입니다. 미국은 1백년전부터 세계의 전작물의 씨앗을 모으기 시작하여 이제는 야생종을 포함, 46만종에 달하는 종자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소련은 60년간 걸려서30만종의 씨앗을 수집해 놓고있다는 것이지요.
식물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쓸모없고 위험하다고까지 생각한 물질이 후에 새로운 개발에 따라 황금이 된 예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가솔린만해도 그런 것입니다. 석유가 처음 발굴되었을 때에는 등유로만 이용되었었기 때문에 그 시절에는 가솔린처럼 쓸모없는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라, 램프를 폭발시킬 위험한 방해물이 되기때문에, 어떻게하면 석유에서 가솔린을 제거하는가가, 말하자면 어떻게 버리는가만을 연구해 왔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가솔린 엔진이 발견되고부터는 오늘날엔 가장 요긴한 연료로 각광받게된 것입니다.
우리는 식물이나 동물만이 아니라 물질에도 씨앗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말과 정신에도 씨앗이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이육사는『광야』에서 천고의 먼 미래를 위해서「노래의 씨앗」을 황량한 벌판에 뿌린다고 했지요.
씨앗은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슬기로운 농부는 씨앗을 먹지는 않습니다.
씨앗을 간직하는 것이고, 개량하는 것이고 내일을 위해 뿌리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서 낫부터 가는 사람들은 씨를 보존하거나, 그것을 뿌리는 자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은, 그리고 문화는 바로 씨앗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버린 은유, 경멸된 비문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20만종의 식물가운데 인간이 먹을 수있는 것은 1백종도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힘을 그 백분의1, 천분의1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는 숲에서 살고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맛이 없다고 해서, 영양가가 없다고 해서, 그리고 독성이 있다고 해서 그냥 버려둔 식물가운데는, 그 씨앗을 잘 가꾸고 기르기만하면 얼마든지 풍요한 식량으로 바꿀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 문화의 씨앗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불행히도 나는 토마토와 감자를 한 식물로 만드는 육종학자도 아니고, 또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화공학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언어의 씨앗에 대해서는, 그리고 광야에 뿌리는 노래의 씨앗에 대해서라면 당신과 무릎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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