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류이사엔〃프랑스병〃만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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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바논에는 세 가지 싼 것이 있다. 담뱃값은 비행기 안에서 면세로 사는 값과 비슷하고 술값은 그보다 더 싸고, 그 다음 싼 것이 사람 목숨 값이다. 7년의 내란동안 6만명, 지난6월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1만여 명의 민간인이 죽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싸지 않은 목숨을 갖지 않은 사람이 전체국민의 5%쯤 된다. 내란 중 주거를 아예 외국, 주로 프랑스로 옮겨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백만장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금융중개인이거나 회사소유자·대지주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최하 1천만달러(80억원)이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중에는 물론 수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적어도 프랑스·영국·스위스·모로코 등에 저택과 개인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필수조건이고 베이루트시내에 저택하나, 시골에 큼직한 저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은행구좌는 프랑스·영국·스위스은행에 개설돼있다.

<담배·술값 가장 싸>
아랍국가라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완전히 서양풍, 특히 프랑스식을 따르고 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말도 아랍어가 아니라 불어다. 자녀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프랑스에서와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 유치원의 경우 한달 학비가 1천2백파운드(3백달러)정도로 웬만한 하층계급의 한달 생활비와 맞먹는다. 대학의 경우는1년 등록금만 3만2천파운드(8천달러)가 들어간다. 이런 부유층은 대부분 동부베이루트에서 살고있다.
프랑스군이 레바논을 철수한 1946년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것이 26년밖에 되지 않지만 (독립선언은 43년)프랑스에 대한 레바논사람들의 선호는 비단 이들 백만장자들뿐 아니라 중류이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다 갖고있다.
레바논 전체국민(3백16만명·80년)의 20%가량 되는 중류계층의 사람들은 월수가 l만파운드 (2천5백달러=1백80여만원)이상 되는 사람들이다. 고급공무원·의사·변호사·대학교수·상인 등이 이런 계층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 역시 불어와 영어는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고급공무원들 살 판>
간혹 단독주택을 갖고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의 60%가량은 아파트에 살고있다.
단독주택은 대개 건평 80∼1백평 정도의 저택이며 시골에 별장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레바논에서 생산되는 일상용품이 별로 없는 탓도 있겠지만 중류이상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생활용구와 기호품 등은 90%이상이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상품들이다.
음료수도 이들은 자기나라 물을 마시지 않고 수입한 프랑스의 미너럴워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도 자녀를 프랑스식 아니면 미국식으로 교육시킨다.
일반봉급생활자·공무원·시장상인들의 월수는 대개 3천파운드(7백50달러=60만원)정도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준이다. 그렇게 널찍한 집은 아니지만 30∼40평의 아파트 아니면 베이루트를 둘러싸고 있는 산동네에 살고있다.
지금은 베이루트 시내건물의 25%가 파괴되어 주택난이 심해 집 값이나 임대료가 올랐지만 세 들어 살 경우 오래 전부터 살던 집이면 집세가 오를까봐 걱정할 염려는 없다.
기독교도가 많은 나라라고 하지만 회교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은 그대로 남아있어 집세는 처음 입주 계약할 때의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돼있기 때문이다.30평정도의 주택에 10년전 월1백파운드에 계약했더라도 임대료는 지금도 그대로다. 그러나 현재 이 정도의 집을 얻으려면 3백∼5백파운드는 있어야한다.
이처럼 의식주문제가 그런 대로 해결된다해도 문제는 자녀들의 교육문제다. 레바논은 의무교육 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학교를 다니더라도 수업료를 내야한다. 국민학교나 중학교나 별로 학비의 차이가 없는데도 중간수준의 학교면 한 달에 3백파운드(6만원)를 내야한다. 아랍사회에서는 자녀가 적어야 3명, 그 외에는 평균 5명의 자녀를 갖고 있어 여간해서는 모두 공부시키기가 어렵다.

<폭격으로 주택난 심해>
빈민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한달 수입이 8백파운드(16만원)이하인 것이 정상인데 기독교도보다는 회교도 쪽에 못사는 사람이 많다. 이런 가정일수록 대가족제도를 지키고 있어 10명 정도의 가족이 20∼30평 짜리 집에서 복작거리며 살기도 한다.
중류이하 사람들에게도 하나 괴로운 것은 자동차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나라에는 대중교통수단이 발달돼 있지 않아 일부 시외버스를 제외하곤 대량운송수단이 없다. 베이루트의 경우만 해도 시내버스가 없어서 자기 자동차가 없으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한달 수입이 1천파운드 정도 되는 가정이라도 아무리 고물일지언정 자동차는 갖고 있다. 그래서 인구3백여만명 정도의 레바논에 승용차만 30만대 가량 되고있다.

<회교도들이 더 못살아>
레바논이 한때 중동의 금융시장으로서, 또 중개무역항으로서 경제적 호황을 누리기는 했지만 호황 기에도 부가 일부에 집중돼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자본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피폐해진 상황에서 이러한 빈부의 격차를 줄이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베이루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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