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와 「총명한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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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옆집아이는 다섯살난 우리아이보다 두살 위이지만 우리 아이와 잘 어울려 논다.
그 아이는 총명하고 깜찍스러워 가끔씩 나를 의아스럽게 만들곤하는 괴짜같은 아이이기도 하다.
소꿉놀이를 한다든가 노래를 부른다든가 하며 매우 친하다. 며칠전 방에서 장롱속을 청소하고 있는데 『아줌마, 아줌마』하고 옆집 아이가 다급하게 부르기에 무슨 사고가 났나 싶어 달려갔다.
옆집아이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아줌마, 거지가 동냥얻으러 왔는데요. 아줌마 없다고 했어요.』
『왜 그랬니?』
『아줌마가 있으면요, 돈달라고해요. 돈 없다고하면 쌀이라도 달라고해요. 그래서 없다고 했어요.』-그 아이는 자기가 한일이 잘한 일인듯 의기양양하게 떠들었다.
나는 웃음을 머금으며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뉘주고는 왠지 씁쓸한 마음에 사로 잡혔다.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고 어린애로 생각했던 내자신예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침울해지는 감정을 주체할수 없었다. 어른들의 생활화된 거짓말에 저아이는 거짓으로서가 아닌 사실로서 거짓말이 몸에 밴 것이다.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입으로는 엄하게 가르치면서 행동으로는 거짓말을 배워주는것이다.
어른들의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어린애다운 천진성과 순진함을 잃어가게하고 자꾸만 약아지고 속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모들은 이러한 약삭빠른 아이를 천재나 되는양 자랑하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주변에서 진정한 인간다운 웃음이 자꾸만 사라지는것도 무리는 아닐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의 소박한 천진성마저 잃어져 간다면 앞으로 우리사회는 모래알로 지은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삭막해지고 말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좀 더 신중히 생활에 임해야 하지않을까.
한가마의 쌀을 걸인에게 주는 한이 있더라도 한줌의 인간성을 찾는게 더 시급한 일이 아닐는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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