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비빔밥과 영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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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먹으면서 가만히 보니까 이 비빔밥이라는게 생각치곤 아주 희한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게 그 전부고, 전부이상이다. 딴 음식에도 여러가지가 얼버무려져 된게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여러가지 재료가 쓰여져 만들어진거다. 비빔밥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모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논거다. 그러니까 딴 요리가 단숨에 된거라면 비빔밥은 두숨에 된 요리다.
그러나 이렇게 두숨에 된거란 찾아봐도 그리 많은게 아니다.
두숨이라고 했지만 세숨이다. 두숨으로 해가지고 온걸 다시 비벼가지고 그러고 먹는 거니까 서양접시에다가 이것저것 갖다놓고 두숨입네하는 것보다 훨씬 격이 높은 셈이다.
영국사람이 들으면 그들 속담대로 『제 거위는 백조로 보이느니라』하겠지만 맛 또한 어느 서양요리 뺨치고 남을만한게 비빔밥이다.
아마 이게 생겨나긴 대단히 산문적인 과정을 통해서 였을는지모르겠다. 뛰어난 두뇌들이 모여, 그러니까 훈민정음 짜내듯 천재적으로 창조해냈기 보다는 우리 아낙네 조상들이 부엌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보니 어떻게 생겨난게 비빔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낙네들치고 일은 찢어지게하면서 밥상하나 제대로 받아놓고 끼니를 떼우기란 흔치않은 일이었다. 대개는 식구들이 다 먹고난 다음 부엌에서 물린 상에 남아나온걸 그저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밥에 얹어… 아니, 더쓸 지면이 얼마 안남아 이쯤 끊을 밖엔 없는데 오늘 이 비빔밥을 들고 나온건 일전 서울에서 여기 왔던 형들과 영국얘길하다가 누군가가 『그럼 영국이란 전주비빔밥같은 사회아냐』한데에 약간 억울한 느낌이 있어서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 형의 표현이 옳다. 영국이란 사회의료면에서만 보면 철저한 사회주의나라다. 그러나 경제적으론 노동당이 집권을 해봤자 그 본질면에서의 질서란 자본주의다. 그리고 정치체제면에선 그 바탕은 물론 의회민주주의고 그건 여간해 달라지는 일이 없을 거라고 봐도 괜찮다.
그리고 정식 국호는 왕국이고…. 사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민주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왕국이다, 공화정이다, 뭐다 해놓고 이거 아니면 저거식으로 갈려 싸움도하고 으르렁대고, 서로 죽이는 것조차 다반사로 해왔다.
아니, 왜 이거 아니면 저걸로 한가질 먹어야 하느냐.
이것저것 비벼먹자, 한게 영국이고 그러니까 그게 전주비빔밥같은 사회라는 거였었다. 좋다. 그런데 뭐가 억울했다는거냐? 그건 가만히 보자니 재준 우리아낙네가 비빔밥으로 부렸는데 돈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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