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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대한민국음악제』를 보고|『윤이상의 밤』마련은 일대용단-박용구<음악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정책」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방향감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알 수 없던 문화정책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같던 「대한민국 음악제」가 큰 눈을 번쩍 뜬 것같은 충격을 「윤이상 작곡의 밤」은 안겨주었다.
윤이상은 정치적인 「행동」으로 문제가 된 인물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용단으로 평가되지만, 그 용단에는 바람직한 「철학」이-정치는 가변이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극히 상식적이고도 극히 중요한 철학적 실천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제2차대전때에 「적국음악 금지리스트」라는 것을 발표하고 강력히 엄단했던 독일과 일본은 패망하고, 그 무서운 나치스 독일의 공습을 받으면서도 『독일음악은 세계인류의 것이다』라고 공언하면서 「적국음악」의 개념조차 거부한 영국이 승리한 사실을 우리는 묵시적인 교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역시 「셰익스피어」의 나라다왔다.
그리고 윤이상의 「행동」은 개인의 것이요, 그의 「예술」은 인류의 것이다.
설악산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산들이 지구위에서 「영원」을 주장하듯, 예술은 크건 작건 영원을 주장할 권리를 보유한다.
이왕이면 한 세대가 지나도록 금지되어 온 월북 작가들의 일제때 쓴 순수예술작품들도 제 생명을 다 하도록 풀어주면 어떨까.
그들의 대부분이 잔학한 피의 숙청으로 희생된 것같고 예를들어 정지용시, 채동선곡의 『망향』이나 김소월시, 김순남 곡의『산유화』같은 노래는 망각속에 썩어 버릴 것이 아닐진대, 관대한 해금이 오히려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우리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는「힘」이 될것이 아닐까. 그 해금을 제안해 보고싶다.
하dug든 대한민국 음악제는 제7회를 맞는 금년에 역사적이 될지도 모르는 이벤트를 마련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번 음악제에도 해외에서 활약하는 신인의 초청·소개라는 취지에 따라 바이얼린의 이성주와 피아노의 서주희가 등장했는데, 앞으로 세계의 하늘을 제비처럼 누비기를 기대해 볼만한 기량은 갖고 있으나 음악의「괴로움」이라는 터널을 뚫고 나가야하는 과정이 남아있을 것같다.
조숙한 연주가의 장래는 예외없이 그 터널로 판가름이 나는 것이지만….
초청연주자로는 첼로의 「이나·유스트」와 플룻의 김창국. 그리고 동경교향악단의 내연인데, 김창국은 「바하」의 『무반주 소나타』 에서 더욱 원숙한 음악 세계를 보여 우리를 흐뭇하게했고, 일본에서 민간교향악단으로 가장 오랜 「동향」은 열과 힘에 넘친 연주로-특히「브람스」의 제2번은 가상할만한 관의 앙상블과 아울러 젊은 지휘자 소천의 음악을 만드는 솜씨로-돋보였다.
그보다도 제7회 음악제를 개성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싶은것은 윤이상과 아울러 3편의 현대 창작곡이 좋은 조건에서 연주되었다는 점이다.
나인용의 『코리언 랩서디』, 우종갑의 『기도』, 복도화부의 플룻독주곡『명』이 그것인데, 혼신의 작품세계를 한마디씩으로 논단해버리는 어리석음은 피하겠지만, 새로운 음의 세계를 여는 창작곡일수록 더욱 좋은 조건에서 연주되어야 한다는 점을 모두가 이번 기회에 체험했으리라 믿는다.
「윤이상 작곡의 밤」은 4천석의 세종문화회관을 메울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한사람의 현대곡만으로 이런 현상은 초유의 일이다.
청중의 질도 최고였고, 그연주도 윤이상이 과연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사실을 확신케 해주었다. 「트라비스」는 좋은 지휘자였고 오보연주의「홀리거」는 귀재였다.
내가 듣기에 윤이상의 음악은 한결같이 공자의 「악은 천지지화야」라는 음악사상에 바탕을 둔 아악의 어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같다.
양악의 세계가 미치지 못하는 예악사상의 현대적 구현이다.
그럼으로써 서양이 감동했고 늦게나마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그의 음악은 이제 인간가족의 소중한 유산이 되려하고 있다. 세계는 그의 음악을 통해서 「한국의 마음」을 들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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