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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중류의식은 가변적"-오택섭<고려대 교수·신문 방송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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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회 계층에 관한 연구는 구미 사회학적 연구의 주요대상이 되어왔고 한국에서도 근간 이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작년 본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전 국민의 87%가 스스로를 중류층으로 평가했으며 금년 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80%가 중·중상·중하를 망라하는 광범위한 중류층으로 평가하고있다.
사회구성원을 어떤 계층으로 분류하는 과정에 있어서 흔히 많이 쓰이는 특정 변인으로 수입·직업·교육·주거 지역 및 형태 등 객관적 측정치와 더불어 사회 구성원 스스로가 자신을 평가하는 주관적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상례다. 이런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계층과 지위를 구별하지 않고 개인의 재력(부)을 지위나 계층의 대표값으로 잡으려는데 있다.
사회계층 연구에서 흔히 쓰여지는 유목 가운데는 5등분된 사회 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상·중상·중·중하·하로 구분한다든가, 혹은 노무직(Blue Color) 사무직(White Color)으로 양분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척도들은 개인의 재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도 내포하게 된다. 이와같은 주관적 평가에서 나타날 수 있는 편견과 오차가 여러 조사 결과에서 잘 입증되고 있다.
구미사회에서 얻어진 조사결과를 보면 대다수 국민들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오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모든 응답자의 4분의3가량이 스스로의 생활수준을 평균 혹은 광의의 중류층으로 잡고 있으며 스스로를 노무직이나 최하류층에 속한다고 평가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70∼80%라는 절대다수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보는 이유는 첫째 응답자가 자신의 생활정도를 전국적인 수준에서 평가하지 않고 인접주거지역에 준하여 비교 평가하기 때문이다.
월수 10만원도 안되는 응답자가운데 스스로를 중류층 혹은 그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36·3%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두꺼운」중산층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개인의 실제소득이나 교육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라기보다는 중류층에 대한 동경 내지 기대감의 상승 때문일 수도 있다.
물질주의가 만연된 현 사회에서 낮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나도 중류는 될 수 있다』라든가, 『나는 중류는 되어야한다』라는 의식이 지배할 때 개인이 경험하는 좌절감은 증대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현실과 기대치간의 격차에서 오는, 개인적인 좌절이 집합될 때 사회적 불안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우리나라 국민의 중류 의식을 규명하기 위해 응답자 개개인의 월소득 총액은 물론 응답자가 생각하는 중산층의 월평균 소득을 묻고 나아가 응답자 자신이 5개(상·중상·중·중하·하)의 사회계층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물어 이 3개 문항에 대한 응답자료를 상호 대비함으로써 주관적 평가와 객관적 자료와의 거리를 측정해보았다.
조사결과 예상했던대로 교육·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스스로의 생활정도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정도를 판가름하는 요인은 자신의 소득이나 교육수준뿐만 아니라 상·중·하층을 가름하는 소득액을 얼마만큼 높게 또는 낮게 잡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가 생각하는 중류층은 20만원대와 70만원대 이상 등 극한치를 제외하고는 30∼60만원 사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최소한 월수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중류층에 대한 인식이 극히 주관적이고 따라서 합치점을 찾을 수 없음을 시사해준다.
이런 결과로 볼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류의식은 극히 가변적이어서 각자가 갖고 있는 저울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임의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나아가 모든 사회조사의 결과로 나타나는 중류계층인의 비율이라기보다 「중류층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비율이라고 해석함이 옳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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