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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애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평생 때묻지 않은 생활로 일관하신 은사께서 어쩌다 잠시 공직용 맡으셨다가 퇴임하시며 『아무리 불행하고 가난해도 내 뼈를 묻고 자손들이 자랄 곳은 결국 이땅뿐이니 사랑하지 않을수 없느라』 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애국애족이란 국민의 가슴깊이 자리잡힌 본능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침략한 나라를 미워하고, 경기에선 우리가 이겨야 좋고, 우리사회가 잘못되면 걱정도 한다.
그러나 애국이 맹목적 일때 어떤나라건 사회는 정체하고 국제적으로는 고립하며 역사는 퇴보하게 마련이다. 역사왜곡시비의 와중에서 일본의 어떤 장관이 일본에 반일적인 사람이 많다고 개탄한 기사를 읽으며 맹목적인 애국의 전형인 듯 싶어 씁쓸안 심정을 지을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인 모두가 그럴까. 왜소하고 교활하게 묘사되는 일본인의 개념만이 실상일까. 1944년 여름, 서울혜화동에 살던 옛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당시 일군헌병사령부가 주둔하던 보성중학교 철조망옆 벚나무에 올라가 버찌를 따먹던 여덟살의 소년이 순찰중인 사병에게 잡혀 사무실로 끌려갔다. 한 헌병장교가 소년의 이를을 묻고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마룻바닥에 끓어앉힌후 일본도를 빼어 목을 겨눈채, 기어다니며 살려달라고 빌도록 강박하였다.
다른 장교가 표독스런 욕설과 함께 소년의 뺨을 치고 무릎을 찼다. 이때 다시 쓰러진 소년을 안고 일어난 사람은 그방에서 가장 하급이었던 헌병 중위였다. 그는 폭행하던 상관들을 무섭게 매도한 후 잠잠해 진 사무실을 뒤로 하고 소년을 목마태워 집까지 대려다 주었다.
어린소년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 일본인중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는 말도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국주의의 부활,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꿈꾸는 일본의 정책을 경계하는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경쟁국 일본내에, 자국의 잘못을 질타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우리에게 사죄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더욱 두려워한다.
14일 동안이나 사투하던 태백광산의 근로자를 생환후에나 알게 한 우리의 언로, 아마추어가 보기에는 패한 것이 뻔한 경기에 승리를 선언하는 심판, 길가에 흐트러진 태극기, 구청·세관의 부정, 학생들을 울리는 수학여행, 남의 탓을 내세우고 스스로의 잘못에 외면하는 나 자신…, 이런 것들이 바로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의연하게 애국의 의미를 말할 수 있을게다.
이수성
▲1937년 서울출생▲서울대법대·대학원졸(법학박사)▲67년서울대법대교수▲미국피츠버그대·파리제2대교환연구원▲서울대학생처장▲현서울대법대교수▲저서=『형법총론』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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