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 담합에 발목 잡힌 건설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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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초 시공사 선정을 앞둔 140억 달러 규모의 쿠웨이트 신규 정유공장 건설 사업. 입찰의향서를 낸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에 최근 발주처로부터 한 장의 공문이 날아들었다. 4대 강 사업 담합으로 처벌받은 내용을 상세하게 소명하라는 내용이었다. 대형업체 A사 관계자는 “해외 건설사업에도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해외 경쟁사가 4대 강 사업과 관련해 국내 건설업체가 담합으로 처벌받은 걸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입찰에서 배제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건설업체들이 ‘4대 강 사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안으로는 담합에 따른 과징금과 입찰 제한으로, 밖으론 주력 사업인 해외건설까지 위협받고 있어서다. 이미 얻어맞은 과징금만 1000억원대가 넘는데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과징금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호남고속철도 수주 담합 사건 등을 더하면 올해만 6000억원대 과징금을 얻어맞았다. 더 큰 문제는 과징금이 아니라 국내 업체들의 주력 사업인 해외건설이다.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기획정보실장은 “담합 문제는 각국 발주처의 이익과도 직결되는 예민한 문제여서 여러 채널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기다 실제 국내 업체들이 원전을 시공 중인 아랍에미리트에선 최근 원전 공사에 참여 중인 국내 업체에 4대 강 사업 담합에 대해 소명을 요구했다. 앞선 4월엔 노르웨이 오슬로 터널사업 발주처가 해당 업체에 담합에 대한 사실관계 등을 묻기도 했다. 한 대형업체 관계자는 “해외에 담합으로 인한 제재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쟁국과 경쟁사의 비방도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국인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해 4대 강 담합을 대서특필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올 들어 4대 강과 서울 지하철 7호선 담합 등을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올해 수주 목표액인 700억 달러는 물론 내년 해외건설 50주년을 맞아 누적 수주액 70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계획마저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일 현재 해외건설 수주액은 557억2700만 달러로 올해 목표(700억 달러)의 79% 수준에 그쳤다. 김 실장은 “담합 문제가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면 내년부턴 국내 업체의 입찰 참여 제한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건설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도 영향을 받을 게 뻔하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업체들도 과당 경쟁을 지양하고 공정경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정부도 지나치게 몰아가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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