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 Q] '도청 정보 종착역' 의혹 김현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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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정치전문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 현철씨가 미림팀 도청 정보의 종착역이라고 폭로자 김기삼씨는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았든 몰랐든 현철씨가 정보기관으로부터 핵심 정보를 공급받은 의혹이 짙다고 정치권 인사들은 증언한다.

1996년 12월 하순 서울 인사동의 한정식집. 대선후보 경선을 준비하던 이회창 신한국당고문은 측근 의원 6명과 연말 저녁모임을 가졌다. 서상목.백남치.김영일.박성범.황우여 의원 등이었다. YS계가 이홍구.이수성씨 등을 저울질할 때 이들은 1착으로 이회창 캠프에 합류했다.

며칠 후인 97년 1월 초. 6인 중 한 명인 Q의원은 현철씨의 전화를 받았다. 현철씨는 "왜 그런 모임에 참석하느냐. 며칠 후에 아버지가 연두회견에서 구상을 밝히면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Q의원은 당시 "현철씨가 모임의 대화 내용을 잘 안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철씨와 가까운 여권의 고위관계자도 몇몇 다른 참석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평소에 도청당한다는 낌새를 느끼던 이회창씨는 얘기를 전해듣고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정보기관이 개입하지 않으면 모임 내용이 그렇게 알려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해 2월 말 YS를 만난 자리에서 이씨는 그동안 자신이 감시.견제당한 사례를 제시하며 관련자 문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정식집 사건 70여 일 후 현철씨는 곤욕을 치른다. 자신이 다니던 병원에서 무심코 병원전화를 사용해 통화한 내용이 비디오테이프에 찍혀 공개된 것이다. 병원 내 녹화장치에 찍힌 것을 누군가가 유출했다. 테이프에는 현철씨가 방송사 YTN의 인사에 개입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논란이 됐던 현철씨 인사개입의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현철씨의 측근들과 안기부는 공개되기 전 테이프를 회수하려 뛰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비디오테이프 사건 2개월 후 현철씨는 여러 기업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로 감옥에 갔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의 10년은 고사하고 아버지의 임기(5년)만큼도 버티지 못한 권세였다. 그리고 정치정보와의 인연도 끝났다. 당시 그의 수중에 있었을지도 모를 비밀정보들도 그를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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