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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과연 예외였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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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도청(盜聽). 엿듣기다. 남의 대화나 회의 내용, 전화 통화 따위를 몰래 듣는 행위다. 녹음까지 한다. 엿듣는 이유는 뻔하다. 남의 비밀을 캐내 이익을 얻으려는 짓이다. 정보에서 우위에 서거나 그 정보로 상대방을 협박하려는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이른바 '안기부 X파일'도 이 범주에 속한다.

역대 정권은 도청을 두려워했다. 그러면서도 도청이 제공해주는 은밀한 정보의 달콤함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예외가 없었다. 안기부 도청팀장은 "안기부가 대통령을 제외한 이 나라의 최상층부 인사는 모두 도청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과연 대통령은 거기서 예외적 존재였을까.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직후 만난 한 청와대 비서관은 이런 충고를 했다. "e-메일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휴대전화도 남모르는 번호를 갖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언제부터인가 청와대는 011을 쓰지 않고 017을 썼다. 휴대전화 도청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논란이 있지만, 또 검찰이 "휴대전화 도청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거리의 제약이 있고 엄청난 비용이 든다"며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이란 판정을 하기는 했지만, 권부의 핵심도 도청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가 보다.

2002년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도청 구설에 시달렸다. 노무현 후보의 사생활을 도청한 테이프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회창 후보는 도청을 피하려고 자신이 거주하던 빌라의 아래층은 손님 접대용으로, 위층은 딸 부부가 살도록 했다고 했다.

안기부 도청팀인 '미림'을 부활시킨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다. 청와대 수석들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들이 외부로 통화하는 것을 몹시 꺼렸다. "이 전화는 밖에서 다 들어, 조심해"라는 당부와 함께. 김 대통령도 전용차에 비치된 전화를 받으면서 "이 전화 못 믿는데이"라고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를 이용해 정보정치를 했지만 미국에 의해 도청당했다. 1976년 10월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국 정보기관이 전자도청장치를 이용해 청와대를 도청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간 외교현안이 됐던 이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 끝났지만, 박 대통령은 집권 끝까지 도청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정권들은 스스로 도청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도청이란 악마의 유혹에는 약했다. '6공화국 2기 정권'이란 말에 불같이 화를 내면서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 정권이 집권 바로 다음해 미림팀을 부활시켰다. '국민의 정부'라던 김대중 정권도 초기에는 국정원장의 청와대 주례보고를 없애는 등 강한 불신을 나타냈지만, 최근 드러난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즐긴 듯하다. 당시 국정원에 가있던 여권 고위 인사는 "국정원이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다니는 시내 한정식집과 음식점은 다 도청했더라"면서 "이제는 그런 일 없다"고 기자들에게 자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천용택 국정원장은 수백 개의 도청 테이프가 유출됐는데도 이를 눈감아주고 넘어갔다. 도청 테이프 유출 관련자들은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에게도 녹취록을 넘겨줬다"고 증언하고 있다. 뒷거래가 있었거나 약점이 잡혔거나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법도청을 통해 얻은 정보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절차의 적법성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걸 인정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특정인의 약점을 채취해 협박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최상층부 인사'만 도청 대상이니까 일반 국민에게는 피해가 없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인간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숨기고 싶은 몇 대목쯤은 갖고 살게 마련이다. 민주화 인사의 결기를 거꾸러뜨리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무장해제시키는 것만으로도 국민에겐 엄청난 피해가 온다.

과거 정권이 도청에 개입한 실상을 밝히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지금은 과연 정보기관의 도청에서 자유로운지 확인하는 건 더 중요하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