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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재 사진전 ‘오래 기다려온 사진’ 명예퇴직 후 남편 모습 카메라에 담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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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 ‘분열’에서 남편은 죽은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시선은 나를 보면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한 아내지만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타자’이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다른 곳까지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결코 나와 동화될 수 없는 존재, 그가 배우자다.

여기 가깝고도 먼 타자인 남편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가가 있다. 한상재, 그는 25년간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 후 명예퇴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그의 카메라에 가장 먼저 담긴 피사체는 남편이었다.

30년의 세월동안 늘 곁에 있던 남편이기에 다 알고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대로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바라 본 남편은 이질성을 가진 완벽한 타인이었다.

한상재는 카메라를 통해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내밀한 남편의 속살과 교감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그와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카메라가 잊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미래가 출현했다. 그래서 한상재의 사진에는 담담하지만 설레는 감정이 엿보인다. 마침내 마주한 내밀한 남편과의 교감이 섬세하게 표현된 것이다.

작품 속에는 남편의 등이 유난히 자주 비친다. 등은 신체 중 유일하게 스스로가 볼 수 없고 타자에게만 보여지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남편의 은밀함을 등에서 찾은 것이리라.

한상재는 남편의 등이 ‘먼 바다를 헤엄치는 등 푸른 고래같은 유연함과 단단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 등에는 남편이 드러내지 않았던 쓸쓸함과 고단함이 새겨져 있다. 카메라를 들고서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내면이다.

한상재가 카메라를 통해 남편의 속살과 조우하고 이를 사진에 담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표면적인 시간일 뿐, 그 뒤에는 시간으로 환원될 수 없는 더 오랜 기다림이 내재돼 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부터 작가는 남편의 ‘시선이 응시하는 다른 곳’에 닿기 위해 기다리고 준비했다. 이번 전시가 ‘오래 기다려온 사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시는 11월 18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간 갤러리 류가헌에서 계속된다.

한상재
지난 25년 동안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명예퇴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한상재는 첫 번째 개인전 ‘오래 기다려온 사진’전을 시작으로 가족들의 이야기와 여성의 삶의 자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작업할 계획이다.

홍수민 기자 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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