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법 도청 테이프 후폭풍] 수사 방향 정한 검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 김종빈 검찰총장이 26일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의 본질은 국가기관이 개인생활을 불법 도청한 것”이라고 밝힌 뒤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안기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불법 도청 테이프'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큰 방향이 정해졌다.

서울중앙지검 수뇌부는 26일 내부 논의 끝에 공안2부에 수사를 맡기기로 했다. 정.관계 비리를 담당하는 특수부가 아닌 국가정보원 수사를 지휘하는 공안부가 수사를 맡기로 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을 '안기부의 불법 도청 경위 및 MBC 보도 등을 통한 불법 도청 테이프의 유출 과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도청 테이프를 유출한 안기부 미림 전 팀장 공운영씨가 자술서를 통해 도청 테이프의 제작과 MBC에 넘겨진 경위를 설명,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불법 도청 테이프의 내용과 관련된 참여연대의 고발 건에 대해선 도청 문제라는 '본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곁가지'로 조사해 나가기로 했다.

◆ "통비법 위반 첫 언론 수사"=이번 사건은 1992년 말 초원복집 사건을 계기로 불법 도청 행위를 막기 위해 93년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불법 도청 테이프를 근거로 폭로성 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한 첫 수사다.

특히 검찰은 홍석현 전 주미대사와 삼성의 고발 없이 도청과 도청 내용의 유출을 불법으로 보고 사실상 인지 수사에 나선 것이다.

통비법이 적용된 대표적 사건은 2002년 9월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원 도청 자료 수십 건을 공개하자 참여연대가 신건 당시 국가정보원장을 통비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당시 정 의원은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로비전 의혹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도청 자료들을 공개했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올 4월 "부호분할 다중접속(CDMA) 휴대전화에 의한 도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신 전 원장을 무혐의 처리했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공안부에 맡긴 것은 불법 도청 과정과 유포 등 근본부터 보자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도청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범죄행위"라며 "미국 같으면 도청기관을 없애라고 할 사건을 자꾸 도청 내용을 수사하라고 (언론들이) 여론몰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참여연대가 26일 불법 도청 내용에 등장하는 인사들을 고발하면서도 불법 도청을 자행한 안기부 비밀조직 미림팀 관계자들과 이를 보도한 언론사 관계자들을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참여연대의 고발은 불법 도청 자료를 근거로 시작된 것"이라며 "불법 도청 내용을 수사하는 게 부적절하고 수사를 하더라도 안기부, 누설한 직원, MBC 기자 등을 함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판사는 "이번 사건은 불법 도청 자료를 갖고 당사자들을 협박하는 제2, 제3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며 "검찰이 시민단체 등 여론에 떠밀려 수사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수사 어떻게 진행되나=수사 대상은 크게 불법 도청 경위 및 이를 보도한 언론사의 통비법 위반 여부,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 전달 의혹과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떡값' 수수 의혹 등이다.

수사팀은 안기부 특수도청팀 미림의 팀장이었던 공운영씨가 자술서에서 "200여 개의 도청 테이프와 문건을 보관하다 국정원에 반납했다"고 밝혔으나 복사본 등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펼 방침이다. 또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99년 안기부에서 미림팀의 도청 테이프 유출사건을 알고도 법에 따라 처벌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할 부분이다. 도청 테이프가 MBC에 건네지는 과정에서 금품 거래가 있었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수사팀은 일단 불법 도청 자료에 근거한 일부 방송.신문사 등의 보도 및 기사 내용을 확보해 분석할 계획이다.

불법 도청에 개입한 공씨 등에 대한 수사는 현재 국정원에서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공소시효 등을 확인한 뒤 조만간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등을 시작으로 본격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조강수.장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