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자유 심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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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피고인은 단순한 「증거 방법」일 수는 없고 검사와 대등한 입장에 서서 서로 공격, 방어하는 당사자의 한사람이다.
지난번 윤 노파 살해사건의 고숙종 피고인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원심대로 무죄 판결이 선고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세인의 이목이 집중 됐던 박상은 양 살해 사건의 피고인 정 군에 대하여 또 무죄의 판결이 선고되었고 그 판결 이유들이 한결같이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이 임의성은 있으되 신빙성이 없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검사 앞에서 임의로 자백한 것을 법관의 자유심증이라고 봐서 이것을 배척한다면 법관의 자유심증이라는 그 자유는 무제한 한 것이란 말이냐 하는 의문을 많이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법관의 자유심중이라는 「자유」는 어디까지나 자유이지 「자의」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무릇 모든 자유라는 것이 합리성 가운데에서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 달성되는 예가 많듯이 재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법관의 자유심증이란 합리성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법관의 심증 형섬 과정에 있어서는 논리법칙과 경험법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한계가 엄연히 있는 것이다. 이 원칙을 쉽게 말한다면, 통상인 이라면 누구도 의심치 않을 정도의 보편타당성 있는 판단이어야 한다는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임의성 있는 자백이라 할지라도 「작년 2월 30일에 나는 집에 있었습니다」라는 진술은 2월이 28일, 또는 29일까지는 있어도 30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백은 신빙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법관이 논리법칙과 경험법칙에 맞게 합리적인 심증 형성을 하는 데에는 피고인의 연령·성격·학력·경력·진술 내용의 전후 모순성 유무, 진술의 태도, 다른 증거와의 대비 등 종합적인 상황을 기초로 하여야 하는 것이다.
원래 자백이라는 것은 피고인의 공판정에서의 자백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검사가 작성한 자백조서는 엄격한 의미에서 자백이 아니라 자백조서이며 검사가 법정에서 하나의 증거 문서로서 제시하는 물적 증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 정재파 군이 공판정에서도 자백을 하였더라면 아마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법관의 자유심증이라는 것에는 합리성이라는 한계가 있어 자의성과 구별되는 외에 또 한가지의 제약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검사를 피고인 보다 우위에 두지 아니하고 피고인과 대등한 당사자의 위치에 두는 것이며 피고인을 단순한 증거 방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인권보장의 사상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즉 검사는 피고인을 유죄라고 주장하고 피고인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서 공격, 방어하는 것이므로 양자의 지위는 대등한 당사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은 이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피고인에 대한 유죄 판결은 법관이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데 있어 「확신」이라는 심증을 갖는 경우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세상에서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엄격히 말해서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심증이 간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이 의심스러운 경우가 아닌 확신에 의해서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을 정도의 심증만을 심증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관이 어떤 범죄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과거에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범죄 사실)을 현재에 와서 모든 증거를 종합해서 논리법칙과 경험법칙에 따라 관념상에 재현시키는 것이므로 그렇게 쉬운 작업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심증 형성의 과정은 법관도 사람인 이상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재판의 어려움이 있고 재판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종종 문제되는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3심 제도가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번의 정재파 군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 기록이나 공판 조서를 보지도 못하였고 공판에 입회한 사실도 없는 나로서는 그 판결 자체가 어떻다고 비판을 할 자격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이번 사건을 놓고 어떤 평가를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일반론을 얘기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왜 자유심증주의가 채택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데 가장 옳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법관에게 자유심증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검찰에서 자백했으면 그 자백 내용의 신빙성에 대한 검토 없이 반드시 유죄 판결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무고한 사람이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열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여하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에서는 좀더 수사의 과학화에 힘써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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