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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씨 재판 '주인 없는 4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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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재판에서 '주인 없는 돈 40억원'을 놓고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기소된 박 전 실장은 1, 2심에서 유죄,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돼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40억원의 진실'은 박 전 실장의 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김영완(해외 도피)씨가 검찰에 1000만원짜리 국민주택채권 400장을 제출한 것이 발단이었다. 김씨는 "박 전 실장이 맡긴 150억원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실장은 "김씨와 전혀 돈 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40억원이라는 거액을 서로 "내 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희한한 상황이 22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40억원은 누구 돈? =김씨가 2003년 9월 제출한 40억원어치 채권을 박 전 실장이 현대에서 돈을 받았다는 유력한 증거로 검찰은 본다.

김씨가 박 전 실장을 모함하려고 40억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았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액수도 너무 크고, 굳이 제출할 이유도 없다고 보고 있다.

김씨는 검찰에 보낸 진술서에서 "박 전 실장이 '현대 돈'이라며 준 150억원어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맡아 관리했고, 40억원어치 채권은 박 전 실장의 총선 출마 준비자금으로 보관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150억원을 맡아 관리한 정황도 얘기했다. 진술서에 따르면 박 전 실장이 "언론인과의 회식 등에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김씨는 현금 또는 100만짜리 자기앞수표로 1000만 ~ 1억원씩 20 ~ 30회에 걸쳐 30억원 정도를 전달했다고 한다. 자신이 호텔 객실이나 박 전 실장의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반면 박 전 실장 측은 '배달 사고' 의혹을 제기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이 박 전 실장에게 돈 전달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김씨와 짜고 150억원을 착복했다"는 반박이다.

◆ 40억원 어디로 가나=검찰의 자금 추적 결과에서 40억원의 출처가 현대그룹에서 나온 150억원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박 전 실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1.2심 재판부도 제출된 채권 40억원을 몰수하지 않고, 150억원 모두를 박 전 실장에게 추징금으로 선고했었다. "김씨가 자신의 기업 자금 등을 150억원과 함께 관리했었기 때문에 40억원을 이 사건과 관련된 돈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40억원은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김씨에게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무죄가 나면 당연히 150억원의 뇌물수수 혐의 자체가 없던 일이 돼 40억원은 김씨에게 돌아간다. 유죄가 날 경우에도 40억원이 150억원 중 일부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마찬가지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40억원에 대해 몰수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면 관련법에 따라 제출자인 김씨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332조)은 '압수한 물건에 대해 몰수 선고가 없을 때는 압수가 해제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서울고법 형사2부는 지난 4일 주일 한국 영사관을 통해 김영완씨의 진술을 다시 받기로 했다. 40억원의 최종 행방은 재판이 끝나는 10월 이후에야 정해질 전망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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