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억 포기각서 쓴 건 은행강압 때문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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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흥은행에 332억 원을 예금했다가 5억 원만 찾고 7억 원을 포기한 김규배씨는『은행이 현금지급을 거부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강압에 못 이겨 포기 서를 썼다고 말했다.
김씨는 9일 상오10시30분 지병인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들렀다가 응급실 옆 복도벤치서 본사기자와 만나 이 같이 밝히고『예금통장에 예금한 돈을 원장에 기재되지 않았다고 지불을 거부하는 은행처사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왜 27억 원을 포기했나.
▲금전관계문제는 아들(김종선 씨)이 도맡아 처리했는데 내가 예금한 돈이 은행에서 원장에 기재가 되지 않은 것으로 은행에서 지급을 거부하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말이 꾸준히 나와 아들이 포기했다.
-은행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강압을 받았는가.
▲은행관계자들이 돈을 찾으려면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진상을 알아내야 하겠다는 말을 아들로부터 전해 들었는데 이것은 사채업자인 나의 약점을 찌르는 것으로 해석된다.
-원진 이용성 전무는 건강 때문에 27억 원을 포기했다는데.
▲이 세상에 건강 때문에 27억 원을 날릴 사람이 있겠는가. 건강이 나쁠수록 돈이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원진 이전무가 건강 때문에 내가 포기했다고 한 말은 조흥은행이 원진에 대해 온갖 자금압박을 가해 견디다 못해 은행의 비위를 건드리지 앓으려고 그런 식으로 얘기한 것 같다.
어제 그런 보도를 보고 참을 수 없어 처를 시켜 원진 이 전무에게 거짓말했다고 항의전화도 했다.
건강이 나으면 진상을 밝히겠다.
-김상기씨 와는 어떻게 알았나.
▲78년 도 조흥은행과 거래할 때 당시 차장으로 있던 김씨가 나에게 접근 해와 많은 돈을 예치시켜 줘 고맙다며 수양아버지로 모시겠다고 해 수양아들을 삼았다.
지난해 8월 김상기씨의 요청으로 원진무역의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결재권이나 결정권은 하나도 주지 않아 결국 허수아비인 골이었다.
그러나 김상기씨가 은행차장이고 해서 전적으로 그를 믿었다.
-어떻게 해서 거액의 돈을 벌 수 있었나.
▲나는 13살 때부터 막노동판 등 지금까지 고생을 해 오며 돈을 벌었다. 내가 한일은 중국 집·술집 등 안 해본 일이 없으며 70년 도 초에 한강에서 자갈채취도 했고 그 때 영동에 부동산 투기를 해 큰돈을 벌게 되었다.
-지금 심정은?
▲내 집도 지금 조흥은행에 3천만 원에 잡혀 있다. 나는 김상기를 믿고 거의 전 재산을 그에게 맡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의 술수에 넘어간 것 같다. 그러나 고인에 대해서 더 이상 헐뜯고 싶지는 않다.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가.
▲수원에 내려가 있다가 몸이 좋지 않아 어젯밤에 서울에 놀라 와 오늘 병원을 찾았다.
김규배씨는 9일 상오10시20분쯤 지병인 고혈압치료를 받기 위해 부인 채순희씨와 함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승용차로 와 내과 23호실에서 주치의인 내과 최일생씨에게 10여분간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치료를 받은 후 병실에서 나오다 기자와 만나자 손을 내저으며『몸이 편찬으니 다음에 보자』고 하며 자리를 피했는데『잠시만 얘기를 나누자』고 요청하자『좋다』며 5분간 복도벤치에 앉아 경우를 털어놓았다.
얘기도중 김씨는 계속 머리가 아프다며 응급실 옆에 있는 회복실로 부인 채씨가 부축해 들어갔다.
김씨는 누런 잠바와 회색바지차림이었으며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고 얘기도중 간간이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등 불편한 모습이었다.
김씨는『입원절차를 밟을 예정』이라며 응급실 회복실에 누워 있었으나 10여분 뒤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행방을 감추었다. <제정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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