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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여자의 복수' 그게 궁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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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친절한 금자씨’ 주연을 맡은 배우 이영애. 박찬욱 감독은 그동안 그의 영화에서 소외됐던 여성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타며 충무로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박찬욱 감독이 중앙일보에 편지를 보내왔다. 성공작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에 이어 '복수는 나의 것'(2002년), '올드보이'(2003년), '친절한 금자씨'(29일 개봉)로 이어지는 소위 '복수 3부작'을 마무리하는 그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 글은, 내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수십 개 나라의 수백 명 기자, 비평가들에게 인터뷰를 당하는 과정에서 끝없이 되풀이 받아온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의도로 씌어졌다. 다음에 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몇 년 몇 월 며칠자 무슨 신문을 참조하세요"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도 시도해봄직하다. ① 이 글이 실린 신문을 - 물론 각국 번역본도 포함해서 - 복사한다. ② 인터뷰 직전에 배포한다. ③ 한층 신선해진 질문에 성실히 응한다. 그러나 미리 주는 일은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문제의 질문이 나왔을 때 재빨리 복사본을 코앞에 내미는 방법은 어떻겠는가. 내가 이렇게 녹음재생기의 지위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인간임을 선언했을 때 그, 또는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쾌감에 몸이 떨린다. 질문은 이렇다. "이른바 '복수 3부작(Vengeance Trilogy)'은 어떻게 태어났죠?"

세상 모든 작가가 그렇듯이 나 역시 다음 작품을 결정할 때 제일 먼저 적용하는 기준은 바로 최근 작품과의 관계다. 그 영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 동시에 어떻게 다른지 하는 것 말이다. 연관성 측면부터 살펴보자. 3부작을 여는 '복수는 나의 것'은 한반도의 분단문제를 소재 삼았던 'JSA'에 이어 남한 내 계급문제를 다루어보겠다는 포부에서 기획됐다.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큰 두 가지 사회문제를 차례로 고찰하고 싶었다. 따라서 믿거나 말거나 이 두 편은 하나의 쌍을 이룬다. 아마도 세상에서 이토록 다르기도 힘들 이 둘은 각자 서로에게 일종의 자매편이다. 안 닮았어도 자매는 자매다.

'올드보이'의 선택 기준은 두말할 나위 없이 최민식이었다. 한국영화 연기의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두 남자 배우 중 하나와 이미 잇따라 두 차례나 일해 본 처지에서 내 최대 관심사는 나머지 하나와의 만남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어떤 감독이라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거니와 나는 원작만화를 채 읽기도 전에 최민식이 캐스팅될 가능성이 있다는 프로듀서 말만 듣고 그 기획을 덥석 물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김지운.송능한.강제규에 이어 '한국에서 제일 복 받은 영화감독 클럽' 에 가입할 수 있었다. 당대의 위대한 두 배우에게 온전히 바쳐졌다는 점에서, 믿거나 말거나 이 두 편은 각자 서로에게 일종의 자매편이다. 송강호와 최민식, 카인과 아벨처럼 안 닮았어도 형제는 형제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즐겁게 만들었고 그 중 하나는 흥행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자 본의 아니게 두 개의 복수극을 연거푸 만들어놓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잖았겠나. 당연히 그 내면을 들여다본 결과 두 작품에 과잉 공급된 분노와 증오와 폭력이 독이 되어 내 영혼마저 황무지가 돼버렸다는 사실이 관측됐다. 그리하여 분노와 증오와 폭력을 버렸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만, 그러면 얼마나 좋았겠나. 사실은 좀 더 우아한 분노, 고상한 증오, 섬세한 폭력이 도입돼야겠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마침내 일종의 속죄 행위로서의 복수, 영혼의 구원을 모색하는 인간에 의해 수행되는 복수극을 만들어 보이고 싶었다. '친절한 금자씨'는 그렇게 탄생했다.

다음은, 전편과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가 작용한 내력. 'JSA'는 총싸움 장면도 있고, 거대한 세트도 필요했고, 인물도 많이 나오고, 구성도 복잡하고, 무엇보다도 약간 감상적인 면을 가진 영화였으므로 '복수는 나의 것'이 그렇게 단순하고 조용하고 건조해졌다는 말부터 시작해야겠지. 미니멀리즘을 지향했던 게 사실이다. 대사도 줄이고 싶어서 아예 두 주인공 중 하나를 벙어리로 정해버렸을 정도다. 그랬더니 또 싫증이 나 '올드보이'가 그 모양이 되었다. '최소의 영화'에서 '최대의 영화'로, 그것은 과잉의 미학을 지향한다. 송강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최민식의 영화이므로. '얼음의 영화'에서 '불꽃의 영화'로.

그러나 아뿔싸, 이내 치명적인 단점이 발견되었다. 여자 문제. 돌이켜보건대 데뷔작 이래 내 영화는 언제나 2남1녀의 인물 구성을 취해왔다. 2남끼리 대립하는 투쟁의 가운데에서 그녀들의 내면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특히 '올드보이'의 여주인공은 끝내 진실로부터 소외된 채 영화에서 퇴장해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각본을 고치려고 애써봤지만 헛수고였다.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펜을 놓으며 혼자 뇌까렸다. "다음 영화는 여자 혼자 주인공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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