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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서소문 포럼

사라예보와 뮌헨 사이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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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채인택
논설위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고전했다. 경제 문제가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중동의 테러 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 러시아와 관련한 국제 문제에서 속 시원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자제’에서 보듯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는 올해 국제사회에서 무력 개입이 뚜렷한 쇠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공세를 취한 게 드문 사례다. 오바마는 IS와 관련해 “절대 지상군 파병은 없을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는 ‘무력으로는 어떠한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큰 비극을 유발할 수 있다’는 1차 대전의 교훈이 한몫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1차 대전은 외교적인 해결보다 군사력을 동원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듯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욕심이 일으킨 비극으로 평가된다. 이 전쟁은 잘 알려진 대로 1914년 6월 28일의 사라예보 사건이 도화선이다. 문제는 그 사건 뒤 개전까지 1개월간의 시간 동안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됐는데도 결국 대화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지도자들이 지루한 외교 대신 무력이라는 한 방의 유혹에 넘어간 셈이다. ‘한두 방이면 화끈하게 끝난다’는 유혹이다. 하지만 한두 방으로 끝난 무력 개입은 20세기 이후 역사에서 드물다.

 제2차 세계대전은 1차 대전과는 반대로 단호함 대신 유화정책을 편 결과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38년 10월 30일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와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는 뮌헨에서 이 협정에 서명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최후의 영토적 요구’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계 거주지인 주데텐란트를 합병했고 체임벌린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얻었다고 국민에게 보고했다. 1차 대전의 참혹한 기억이 생생했을 당시 체임벌린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보려고 유화정책을 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히틀러의 야욕만 키워 더 큰 전쟁만 초래했을 뿐이다.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상반된 방식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두 가지 교훈 중 ‘뮌헨의 교훈’에 입각해 큰 전쟁의 싹을 초기에 자른다는 명분으로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펴왔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가 ‘뮌헨의 교훈’이 아닌 ‘사라예보의 교훈’에 귀 기울이면서 중동에 대한 무력 개입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큰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 6·25전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무력 개입은 전략적인 실패로 끝났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때만 해도 독재정권만 넘어뜨리면 중동이 평화와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엔 서구식 민주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당시 열린 것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이 판도라의 상자는 국제사회의 복잡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상징한다. 누구도 앞날을 짐작하지 못했다.

 이런 복잡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적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사안이 있다. 오는 9일로 사반세기를 맞는 베를린 장벽 붕괴다. 당시 통일독일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통독 25주년에 맞춰 인터뷰(본지 10월 31일자 30면)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한국은 한국만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다른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과 유사한 방식이 아닌, 세계 유일의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란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통일의 역사가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한반도의 통일 준비를 고유의 지역 사정과 환경에 맞춰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6·25전쟁을 겪은 한반도에선 갈등을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라예보의 교훈도, 틈을 보여선 안 된다는 뮌헨의 교훈 모두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가 가야 할 통일의 길은 이 두 가지 상반된 교훈 사이의 미묘한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 할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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