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고 남의 권리 존중해야 민주주의는 자란다"-피터·현<재미 언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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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의 민주주의>
나는 지난 20년간 파리 런던 뉴욕 등지에 체류하면서 자유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한편 공산 세계를 여행하면서 엄격한 조직생활을 목격해온 터였으므로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있다. 이 때의 민주주의는 서구형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이승만 정권이나 장면 정권이 민주정부로서 실패한 것은 서구형 헌법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 헌법은 1948년에 제정됐는데 한국 상황의 특수성을 도의시한 것이었다.
그러면 특수성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한민족의 분열속성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민족은 몽고족·한족, 그리고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침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동의 무어 대해 하나로 힘을 합쳐 본 적이 없다.
한민족이 갖고 있는 파벌주의와 개인주의 특성은 놀랍고도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는데 기여를 해왔다.
한국 문화는 권위주의적이다. 언어·태도·관습 어느 하나 서구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인류 평등주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없다.
한국말에는 엄격한 존칭어의 사용과 함께 문장구문이 나이·사회적 지위에 어울리게 짜여있다. 유교의 삼강오륜으로부터 형성된 전통적인 습관은 오늘날에도 뚜렷이 남아있다.
한국인의 또 하나의 특성은 타협을 거부하는 속성이다.
민주적인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사회 구성원은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더 많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개인간의 이해충돌을 조정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지나간 한국 정치를 돌이켜 보면 집귄당은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그리고 성급하게 처리했고 반면 불만속의 야당은 중상모략을 일삼으며 국가의 당면문제 해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앉았다.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데도 자유민주주의를 전통이나 그것을 유지할 바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국가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은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인의 자유는 지혜나 예의범절과 같이 넓은 의미의 덕목중의 하나였다.
유교의 오륜에는 자유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서구인들이 그들 나름의 전통속에서 요구해온, 서로 상충될 수 있는 두 종류의 자유들을 동시에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인들은「법 아래서의 자유」와 「소수를 보호하는 다수의 지배」를 선택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공산침략으로부터의 자유, 경제불경기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예부터 내려오는 방법에 따라 국가운명을 발견해내는 자유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뿌리.
서구에서의 민주주의 혹은 자유란 개념은 공동선과 사회복지의 보호·증진을 위한 윤리원칙에 입각한 절제가 따른 개인의 자유를 의미한다.
산업발전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데는 1세기 혹은 2세기의 세월이 걸렸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지난1백여년 동안 급격한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가 요구하는 시민의식을 일본이 형성해 왔는가에 대해 많은 지직인들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국회의원인「이시하라·신따로」(석원신태낭) 는 최근『일본은 책임감, 의무, 그리고 권리에 대한 개인의 자각에 바탕을 둔 시민의식을 적절히 발전시키지 못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일본은 인간존중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적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산업화된 서양을 따라잡으려는 일본의 넘치는 야망은 물질적인 성장과 성공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모든 수단을 정당화시켜주는 태도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대한「이시하라」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갖는 가치 충동는 일본인들의 그것과 다를바 없는데 바로 일본인들이 1백여년전 산업화를 촉진할 때 가졌던 욕망을 한국인들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가족·친척·친구들간에는 서로 관대하고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거칠기 일쑤다. 그들은 공중도덕과 시민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선 우리는 공동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타협의 정신을 가져야하고 평등정신, 그리고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투철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건전한 윤리관을 발전시켜야겠고, 이웃의 권리를 존중해야 자신의 권리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쌍방통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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