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엔 쫓겼지만 발언준비는 철저|「의령임시국회」와 몇 가지 관심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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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령임시국회」는 제5공화국 들어 가장 기억할 만한 국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관에 의한 주민대량살상이란 다루는 사건의 중대·심각성에서 그렇고 이견을 대화로 풀어 여야공동으로 국회소집에 이르게 됐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또 의제 외 발언으로 의장의 경고를 받은 7일 한영수 의원(민한)의 질의에서 의제와 발언내용의 상관성이 새삼 문제되기도 했다.
첫날인 7일 첫 질의에서 한의원의 발언 후 민정당 간부들의 심각한 표정과 움직임을 본 민한당의 임종기 총무는 조중연·김재영 부 총무를 보내 반응을 살피도록 했다.
권 총장·이 총무는『섭섭하다』『근본적으로 민한당의 생각이 그렇다면 같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의제 외 발언은 약속위반이다』는 등 강한 유감을 표했고 두 민한 부 총무는 이를 유치송 총재와 임 총무에게 보고.
민정당 측의 분위기는 한마디로『55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숙연해야 할 자리에서 의제 외의 발언, 개인적 인기발언을 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
정치공세는 자제한다는 민한당의 약속을 받고 국회소집에 합의해 준 이종찬 총무는 『항상 국회를 열어야 한다는 내 주장이 이젠 어렵게 됐다』『당내에서 핀잔을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
그는 『내 주장에 한계가 드러난 셈』이라며 앞으로 대화에 의한 해결을 주장하기가 어렵게 됐다고도 했다.
이재형 대표위원도『의장도 조용히 듣고 의원도 조용히 듣고 나서 이제 와서 어쩌자는 것이냐』고 하면서도 표정은 굳었다.
한의원의 발언을 들은 민한당 지도부도 민정당 못지 않게 심 각.
유치송 총재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 묵묵부답이었고 임종기 총무는 그저『너무 걱정 말라』고만 얼버무렸다.
한의원 발언이 당권도전을 위한 「당내용」이라고 분석한 유 총재 측근은 내년 1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 총재나 신상우 의원에 비해 자금과 조직 면에서 열세인 한의원이「선명성」을 경쟁의 수단으로 택한 것으로 분석.
의원들의 의령사건 질의에 대한 정부측의 답변은 사과와 침통 일색.
유 총리는「책임통감」이란 말을 자주 쓰면서『건국이래 가장 엄청난 사건』『공직자의 대후 각성』등을 강조하고 사태수습과 재발방지에 결의를 보였다.
노태우 내무장관도 『이번 사건은 경찰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라면서 「심기일보」 「분골쇄신」등 질의보다 뎌 강한 어조로 경찰상의 재정립을 다짐.
8일 질의에 나선 조일제 의원(국민)은『주영복 국방장관은 본인의 동향친구인데 이런 질의를 하게 돼 괴롭게 생각한다』고 예비군 문제 등을 추궁. 문병량 의원(민정)은『경찰 직을 평생을 바쳐도 후회 없는 직업이라고 자원할 풍토의 조성이 규정이나 제도보다 중요하다』 고 지적.
주 국방장관은『참으로 어이없고 엄청난 사건결과에 대해 국방을 맡은 국무위원으로 책임을 깊이 느낀다』고 먼저 말하고는 조 의원 질의에 답변.
준비시간은 짧았지만 발언준비에 각 당은 총력태세.
민정당은 6일 아침 윤석정 사무차장 주재로 열린 질의 자 회의에서 담당분야를 조정하면서 이례적으로 중요문제는 중복질의를 하더라도 각도를 달리하여 상세하게 언급해도 좋다는 원칙을 시달.
민한당은 3일 상오 당무회의에서 자청한 한영수 의원을 발언자로 선정.
이 소식을 들은 민정당 측은「우려」를 나타냈으며 7일 한의원의 발언이 있은 후『당초 그를 내세운 게 잘못』이라는 등 민한당을 원망.
국민당은 이론 없이 의령출신의 조일제 의원을 내세우기로 했으며 조 의원은 정책위전문위원 등과 함께 원고를 만들었다.
대화에 의한 공동소집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이번 임시국회가 과인 어떤 경위로 열리게 됐는가에 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고 숨은 얘기도 더러 있다.
한마디로, 국회소집에 대한 야권의 결속이 전례 없이 단단했다는 점과 이 민정 총무의 형세판단이 소집의 주된 동인.
한때 국민당 측이 소속의원들의 소집요구 서명 철을 민한당에 넘겨주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국민당도 소집에 적극적이었고 의정동우회 역시「소집」쪽으로 기울어 소집이 대세가 된 분위기였다.
지난달 30일 임 민한 총무는 김기수 국민당 부 총무로부터 3일 총무회담이 결렬되면 하오2시에 임시국회소집을 요구하는 국민당소속의원 25명의 서명을 넘겨받기로「철석같이」약속을 받아 냈다고 했다.
이런 야권분위기를 파악한 이 민정 총무는 임시국회를 여는 방향에서 검토를 시작하고 권정달 사무총장 등 당직자들과 협의, 방향을 잡은 민정당은 3당 총무간 접촉을 벌였고 이동진 국민당총무도 단독소집 불사라는 당론재조정을 약속.
이 국민 총무는 임시국회소집에는 동조하되 정국경화를 막기 위해 3당 공동으로 소집토록 노력하기로 당론을 재조정해 임 총무의 양해를 얻었다. 임 총무도 이 국민 총무가 모처에서 걸려 온 회유(?) 전화를 받고『이번에 이 약속을 안 지키면 내 정치생명은 관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고 거절하는 현장을 보고는 공동노력을 하기로 다짐했다는 후문.
2일 하오 3당 총무가 모임을 가졌을 때 이 민정 총무는 야당 권이 톤을 낮춰 줄 것을 요청했고 1일 하오부터 민정당 측의 변화기미를 느껴 온 야당 측도 대체로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였다.
이런 결과를 들고 이 민정 총무는 당 내외 관계자들을 만나『이 문제로 본회의를 열어 정치적으로 나쁠 것이 없다』는 점을 역설해 납득을 얻어냈다.
민정당 측은 총력저지에 나섰을 경우 야당연합전선을 와해시킬 자신은 섰지만 그 결과 올 정국경화로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분석을 했다는 얘기다. <전 육·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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