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물가잡았지만 "경기처방"에 고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만장의 박수를 받으며 이른바 실물경제팀이 등장한지 13일로써 꼭1백일이 되었다.
1백일이면 실적을 평가받기엔 아직 이르지만 팀 컬러와 능력을 선보이기엔 충분한 기간이다.
실물경제팀이 들어설때 박수를 많이 보낸 것은 거는 기대가 컸기때문이다.
연3년째 장기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경제계는 변화와 활기를 갈망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서 김준성부총리를 팀장으로하는 새 경제팀은 「현장경제」「실물경제」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바쁜 1백일을 보냈다.
등장한지 열홀만에 「1·14경제활성화종합대책」을 내놓고 다시 3월29일에는 금리의 대폭인하를 단행했다.
시간이 있는대로 업계 사람들을 만나는가 하면 창원·구로공단등을 시찰하는등 실물팀다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경제운영을 하는 스타일도 사실 바뀌었다. 전팀(팀장 신병현)이 지수경제방식이었다면 지금팀은 감의 경제를 중시하는 인상이다.
현장의 감각을 중시하고 정책결정은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것등이 달라진 것이라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실물팀의 실물처방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실물(현장)은 아직 달라지는 기색이 없다.
경기예고지표는 석달째 계속해서 불황권의 0.9에 주저앉은채 일어설줄 모른다. 수출은 우려될정도로 둔화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투자와 내수도 여전히 무기력하다. 다만 물가가 예상이상으로 안정추세를 굳히고 있다는 사실과 국제수지 적자폭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을 줄 뿐이다.
봄이 되면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새팀의 예측은 빗나가고 있다.
수출과 내수, 그리고 투자가 계속 부진하니 자연히 경기의 새싹이 돋아나질 못한다.
수출은 3월말현재 작년동기에 비해 7.4% 증가한데 그쳤고 수출주문(LC)은 오히려 8.1% 감소했다.
LC내도의 감소는 작년9윌이후 계속되고 있는 좋지않은 조짐이다.
이같은 수출의 부진이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총생산액중 수출의 생산유발효과가 34.7%나 되고 있기 때문에 수출둔화는 그대로 경기침체로 연결된다.
거듭된 금리인하와 1.14종합대책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날줄을 모르고 있다.
시설투자의 부진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에서 취급하는 설비자금은 올해 목표대비 3월말현재 11.3%밖에 나가지 않았다.
외화대부·전대차관등을 전부 합친 전체설비자금은 올해 3조2천4백억원계획에 2월말현재 2천3백억원정도 (7.1%) 공급됐을뿐이다.
작년에 비하면 약간 나아진 것이긴 하지만 아직도 부진하다.
특히 국제수준이하로까지 금리를 대폭 내리고 할 수 있는 투약을 다해보는데도 좀처럼 경기활성화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 전경련에서 조사한바로는 4월이후에는 국내경기가 다소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내수·수출 모두 쉽사리 좋아질 여건이 아니다.
수출은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기침체-수입수요감퇴, 그리고 중동간경기의 냉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나라도 마찬가지다.
내수는 늘어날 수 있는 구매력이없다.
도시근로자들은 임금상승의 억제로, 농가는 쌀등 농산물값의 하락으로 실질소득의 증가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소비로 지출할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이다.
투자는 사업의 수익성이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에 하려고 들지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기회복을 성급하게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다.
그러나 물가의 안경추세와 국제수지적자폭의 축소는 밝은 측면이다.
작년 6, 7월까지 1년전대비 24∼25%수준이던 물가상승률은 매달 떨어져서 올해 1, 2월에는 11%수준, 그리고 3월에는 9.8%(소비자 9.6%) 수준으로 내렸다.
드디어 한자리숫자로 내려앉았다. 연말에 가서 7∼8%선을 바라보던 정부는 이제는 4∼5%수준까지도 바라보는 것같다.
국제수지 적자폭의 개선은 수출을 늘려서가 아니고 불경기로 수입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데 기인한다.
3월까지 수입은 작년보다 오히려 4억달러가 줄었다.
수출이 잘되어 적자폭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아만할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 보면 실물경제팀의 1백일은 물가에서 착실히 득점을 했지만 성장·경기의 측면에서는 고전하고 있는 셈이다.
실물팀이 내건 캐치프레이즈와는 어딘가 맞지않는 느낌을 갖게 한다.
실물팀의 처방은 경기활성화이고 그러려면 효과는 그쪽에서 나타나야한다.
엄격하게 지적하자면 물가안정은 정책적 노력의 산물이기보다는 국내외불황과 원유등 해외원자재및 농산물가격의 하락덕분이다.
여기에 낮은 임금상승률을 감수한 근로자들이 큰 기여를 한 결과다.
올해 물가는 미국·일본을 비롯한 거의 세계 모든 나라가 예상이상의 안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해외요인의 기여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물가·성장·국제수지 모두를 고려하고 또 균형을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만 잘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별로 오를 요인이 없는 물가에 매달릴때가 아니라 성장과 국제수지쪽에 힘써야할 때다.
이대로 가면 올해 성장은 목표(6.9%)달성은 어렵다. 수출도 득표보다 훨씬 밑돌게 될 것이다.
투자활동이 이렇게 계속 부진하면 앞으로 경기가 회복돼도 큰일이다. 물량공급부족사태가 올지 모른다.
물가안정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성장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선 1년에 40만명이 새일자리를 찾아 사회에 나오며 이들을 소화시키려면 적어도 7%의 성장이 필요하다. 지금은 물가안정에 너무 경사되어 성장이 뒷전에 밀린 느낌이다.
물가안정과 성장과의 밸런스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같다. 실물경제팀은 물가를 잡는대신 경기를 놓친 것이다.

<이제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