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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Sorry 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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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000년 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가까운 톈진(天津)에 작은 회사 하나가 문을 열었다. '미안하다'는 사과 전달을 전문으로 대행하는 중국 최초의 '대리 사과 업체'였다. '소리(Sorry) 회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직원은 불과 8명. 그러나 변호사나 심리학회 회원 출신 등 모두 달변의 40대 중년 남녀들로 무장했다. 이들은 사과를 대신 전달하며 건당 20위안(약 2600원)을 기본 비용으로 받았다. 사과 전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꽃이나 조그만 선물을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난도가 높은 사과의 경우엔 가격을 올려 받았다. 벌이가 짭짤하다며 류칭(劉靑) 총경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석 달 뒤엔 베이징 인민라디오 방송국이 '오늘 밤 공개적으로 사과합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에게 효도가 부족했다고 용서를 비는 아들, 모진 말로 어린 제자의 가슴에 상처를 안겨 미안하다는 교사 등. 다양한 사과 사연이 전파를 타며 청취자를 울렸다.

Sorry 회사나 사과 프로그램의 탄생은 달라진 중국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중국엔 미안하다는 뜻의 '두이부치(對不起)'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선 거의 듣기 어렵다. 여기엔 다양한 해석이 따른다. 체면을 중시해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다는 문화적 측면의 설명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와 관련해 사과하면 배상이라는 손실이 따르기 때문이라는 경제적 이유 등.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문혁(文革) 당시 박해의 경험이 준 교훈'이라는 역사적 차원의 설명이다. 사과한다는 것은 곧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이 경우 흔히 죽음으로 직결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서울을 다녀갔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그 어느 것에도 '미안해하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과거에 대한 심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모호한 말이 고작이었다. 제대로 사과 한번 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모양이다. 그런 일본을 향해 차라리 중국의 Sorry 회사나 한 번 이용해 보라고 권하면 어떨까.

사과하고 용서해 화합을 이루는 아시아의 미래는 한낱 꿈에 그치고 말 것 같아 안타깝다.

유상철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