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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투기억제 치중, 집값 상승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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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왔던 부동산 정책을 손질해 8월까지 새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최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대한 대책이다. 잠시 주춤했던 강남의 집값이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고, 그 상승세가 판교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남부지역으로 거침없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현상이 국지적.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며 조기에 차단하지 못하면 전국적으로 확산될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엄청난 양의 시중 부동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보장되면서 안전한 부동산이 제공된다면 그곳으로 자금이 몰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공급 확대보다는 투기적 수요를 조기 차단하는 쪽에 무게를 두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적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한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중과세와 주택담보대출 조건의 차별적 적용,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완화 등 그동안 논의돼 왔거나 미뤄졌던 정책들을 강화해 시행하는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예측된다.

주택 공급은 현재 양적으로는 충분하므로 현재의 정책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중대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 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강남의 재건축에 대한 규제 완화와 수도권에서의 신도시 추가 건설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다. 대신 서울 강북과 기존 도시의 여건 개선에 중점을 두어 중대형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정부가 수요 억제에 치중하고, 공급에는 소극적인 정책을 취할 경우 단기적인 투기 억제에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자칫 공급동결 효과를 가져와 장기적인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집값 상승을 선도하는 주택의 원활한 공급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양질의 주택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집값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수도권의 집값은 크게 안정될 것이다. 이와 함께 시중 부동자금을 주식이나 채권 같은 보다 생산적인 투자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부동산 투기는 빠르게 잦아들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전국적으로 100%를 넘는다고 하지만 수도권에서의 주택부족은 여전하다. 이번 판교 신도시를 둘러싼 논란은 양질의 주택과 거주환경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다양해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개발이 필요하다. 강남에서의 재건축 완화, 강북에서의 뉴타운 개발, 수도권 외곽에서의 신도시 개발 등은 배타적인 대안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개발형태다.

신도시 개발은 양질의 주택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인구와 산업의 재배치를 통한 효율성 강화 차원에서도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다. 그러나 과거 신도시 개발은 지나치게 경기 의존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은 물론 땅값 상승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재건축과 재개발 역시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주택을 다양한 형태로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서울에서 이뤄져 왔던 재건축.재개발을 보면 신도시 개발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토지를 확보한 뒤 시장 상황에 맞춰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개발을 통해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해 주는 토지.주택 공급체계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온영태 경희대 교수.건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