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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행담도 개발사업 감사 결과 발표] 원초적 졸속 … 고위층 개입 … 문제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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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감사원은 16일 발표한 중간 감사 결과를 통해 행담도 개발사업이 시작 단계부터 부실투성이였다고 규정했다. 감사원은 당초 도로공사가 충분한 법적 검토 없이 외자 유치에 급급해 사업을 졸속 추진한 것을 문제의 시발점으로 봤다. 여기에 자본 조달 능력이 없는 김재복씨의 경영권 인수, 청와대 관계자들의 무분별한 개입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을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행담도 개발 의혹은 개발사업과 관련이 적은 도로공사가 편법을 동원해 무리하게 추진했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개입한 데다, 감사 결과가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의 재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도공의 무리한 사업 진행=감사원은 "해양레저단지를 만드는 행담도 개발사업은 애초 도로공사의 목적사업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또 행담도 일대는 국가산업단지에 속해 복합 레저시설 설치가 불가능한데도 도공은 이를 무시했다.

특히 도공의 오점록 전 사장은 지난해 1월 "외자 유치를 위해 필요하다"며 실무진과 법률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EKI 김재복 사장과의 불리한 협약 체결을 강행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오 전 사장이 협약을 밀어붙인 탓에 도공은 행담도개발㈜ 지분이 10%에 불과한데도 사업 실패에 대한 위험을 모두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오 전 사장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한 이유다.

◆ 외자 유치 사업 아닌 개인 사업=행담도 개발은 1999년 도공과 싱가포르계 기업인 ECON 간 합작사업으로 시작됐다. 행담도개발㈜ 지분은 ECON이 설립한 자회사인 EKI가 90%, 도공이 10%를 보유했다.

그러나 매립 면허 지연 등으로 인해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해지고 ECON의 일부 계열사가 자금난을 겪게 되자 ECON은 사업 철수를 고려했다. 이 과정에서 ECON 측의 감사로 파견된 김재복씨가 2002년 JJK라는 회사를 설립, ECON으로부터 EKI 지분 53%를 인수했다. 김씨가 행담도 개발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감사원 박종구 제1차장은 "김씨가 경영권을 확보한 뒤 사업자금은 다 국내에서 조달됐다"며 "이것이 개인 사업이지, 외자 유치 사업으로 볼 수 있느냐"고 말했다.

◆ 청와대 인사들의 부적절한 개입=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지난해 5월 문동주 서울대 교수를 통해 김씨를 소개받았으며, 김씨를 정태인 동북아위 기조실장에게 소개해 줬다. 정 전 수석은 또 김씨에 대한 신임과 행담도 개발사업의 중요성 등을 담은 캘빈 유 주한 싱가포르대사의 서한도 정 실장에게 전해 줬다. 퇴직 후인 지난 5월 3일에는 도공과 행담도개발㈜ 간 분쟁을 중재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동북아위의 개입은 보다 적극적이었다. 문정인 위원장은 공식 논의도 없이 지난해 7월 행담도개발㈜과 S프로젝트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문 위원장은 또 9월 "동북아위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행담도 개발사업의 건설 재원 조달과 관련한 지원 의향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정부 지원 의향서를 행담도개발㈜에 써주었다.

정 실장은 지난 2월 도공이 행담도개발㈜의 주식을 채권 발행 담보로 제공하는 데 동의하지 않자 도공 관계자들을 다그치기까지 했다.

◆ 변칙적인 채권 발행=지난 1월 EKI는 씨티증권을 통해 8300만 달러의 채권을 발행, 우정사업본부와 교원공제회가 이를 인수할 당시 행담도개발㈜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려 했다. 그러나 도공 측은 이를 거부했다. 주식 담보 제공은 도공 측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김재복 사장은 이를 씨티증권에 알리지 않았고 "도공의 서면 동의서가 곧 발급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또 씨티증권의 모 상무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으나 이를 우정사업본부와 교원공제회에 알리지 않고 채권 발행을 강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씨티증권 측은 "법률적 자문은 받았고 규정위반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발행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채권 대금을 관리한 외환은행 관계자는 도공의 동의서가 없음을 알면서도 채권자 집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씨티증권의 부탁을 받고 대금 인출을 허용해 줬다는 것이다. 업무상 배임이라는 감사원 판단이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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