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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Movie] '배트맨…'의 고담시 '씬시티'의 악취 희망은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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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쥐인간 '배트맨'이 8년 만에 돌아온다. 24일 개봉하는 시리즈 5편 '배트맨 비긴즈'다. 타락의 도시 고담시에서 정의를 부르짖었던 그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선다. 30일 선보이는 '씬시티(Sin city)'는 어떤가. 제목 그대로 범죄의 도시. 현대 메트로폴리스의 악몽을 상징하는 '고담시'와 '씬시티'의 한바탕 격돌. 천재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배트맨)과 로버트 로드리게스(씬시티)가 빚어낸 우리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타락의 기원=고담시와 씬시티는 어둡다. 액션의 대부분이 밤에 진행된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마천루, 현대판 바벨탑 같은 화려한 빌딩 사이에는 금방이라도 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우중충한 골목이 있다. 고층건물을 연결하는 첨단열차가 공중을 가르고(고담시), 날렵하게 빠진 스포츠카가 거리를 질주해도(씬시티) 두 도시는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묵시론적 암시로 가득하다. 고담시와 씬시티는 동전의 앞뒷면. 일란성 쌍둥이와 흡사하다. 인간의 가없는 탐욕이 빚어낸 악취가 진동한다.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의 탄생 설화다. '살인예술가' 조커(배트맨.1989년), 기형아 악당 펭귄맨(배트맨 리턴.92년) 등 악한의 소굴인 고담시의 원형을 탐색한다. 타락의 원인은 불황, 경제적 요인이 크다. 구약성경의 소돔과 고모라를 합성한 느낌의 고담시는 극도의 경기침체에 시달린다. 고담시 최고의 부유층 출신인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은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스스로 빈민의 거리에 들어가고, 또 히말라야 설산에서 심신을 닦으며 일그러진 부의 균형을 시도한다.

'씬시티'는 정치의 도시. 정치(상원의원).종교(추기경).행정(경찰)이 밀약해 도시를 지배한다. 이른바 지배층의 부패로 거리에는 걸인.창녀가 넘쳐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지도층의 윤리가 땅바닥에 떨어진 세상. 그곳에선 오직 힘이 정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보복이 반복된다.

◆반(反)영웅의 탄생='배트맨''씬시티'의 원작은 모두 만화. 1939년 만화잡지 DC코믹스를 통해 처음 얼굴을 알린 '배트맨'은 '스타워즈' 연작에 크게 뒤지지 않는 명성을 쌓아왔다. '씬시티'도 80년대 미국을 뒤흔든 만화 연작을 원형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평이다. 그러나 두 영화는 매우 이질적이다.

'배트맨 비긴즈'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스템을 따랐다면 '씬시티'는 저예산영화 성격이 강하다. 제작비도 1억3000만 달러(배트맨) 대 4500만 달러(씬시티). 미국 뉴욕을 모태로 한 두 도시의 조성 과정도 판이하다. 고담시는 미국 시카고와 영국 초대형 스튜디오에서 주로 만들어졌으며, 씬시티는 컴퓨터 그래픽(CG)의 도움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씬시티는 100% CG로 창조해낸 공간. 배우들은 텅 빈 무대에서 일종의 '인형 연기'를 해야 했다. 고담시가 현실과 비슷한 반면 씬시티가 환상적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두 영화에는 수퍼맨 같은 영웅이 없다. 배트맨은 제법 인간적인 캐릭터다. 밀수업자나 고담시를 멸망시키려는 '악의 대리자' 앞에서 자주 무릎을 꿇고, 씬시티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도 사회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다.

◆희망은 없나=두 영화가 뚜렷하게 갈라지는 지점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타락의 도시를 구원하려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고담시의 희망은 물론 배트맨, 브루스 웨인이다. 뒷골목 불량배에게 부모를 잃은 배트맨은 지도층의 각성을 촉구한다. 귀공자 출신인 그는 금전을 떠받드는 도시의 실력자를 물리치고 이른바 '부의 공평한 분배'를 제시한다. 복수 대신 조화를 목표한다.

씬시티의 해법은 직선적이다. 화해.균형보다 투쟁.반항이 부각된다. 경찰에서 소외된 정직한 경관, 권력형 성직자에 맞서는 강인한 전사, 연합체를 구성한 거리의 여인들이 그릇된 공권력에 주먹을 날린다. 복수와 폭력의 이중주가 춤을 춘다. 과연 그곳에 희망이 살아 있을까. 씬시티가 고담시보다 훨씬 현실적이면서 또한 절망적인 이유다. 뉴욕.로스앤젤레스.런던 등 세계의 거대 도시를 합쳐 놓은 두 도시의 오늘이다. 서울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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