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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명 미만 야외공연, 안전 매뉴얼 안 지켜도 그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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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안전요원을 굳이 두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니, 행사 신고 자체를 하지 않아도 됐다. 16명 사망자를 낸 지난 17일의 판교테크노밸리축제가 그랬다. 그야말로 안전사각지대였던 셈이다.

 사고가 난 축제뿐 아니라 대부분 중·소형 이벤트 행사가 다 마찬가지다. 안전을 규제하는 아무런 법규가 없다. 각종 공연 안전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현행 공연법은 실내 공연과 3000명 이상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야외 공연만 대상으로 한다. 3000명 이상 오는 야외 공연은 주최 측이 사전에 ‘안전 재해대책 계획서’를 만들어 시·군·구청에 제출해야 한다. 어기면 제재를 받는다.

 이와 달리 3000명 미만 소규모 공연에는 소방방재청의 ‘공연·행사장 안전 매뉴얼’이란 것을 적용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권장 사항이다. 이 때문에 매뉴얼에도 ‘(이 매뉴얼이) 특정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700명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 그 정도가 온 판교테크노밸리축제는 안전과 관련해 지켜야 할 아무런 규정이 없었던 것이다.

 사고가 난 축제는 또 공공장소를 빌려 치르는 행사임에도 사전에 허가받을 필요가 없었다. 성격상 ‘일반광장’으로 분류된 곳에서 행사가 열려서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은 보호해야 하는 나무 등이 있는 ‘경관광장’, 교통이 번잡한 교차로나 역 앞에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교통광장’, 그리고 일반광장으로 나뉜다. 경관·교통광장에서 행사를 하려면 각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신고하고 허가받아야 하지만 일반광장은 대부분 그런 게 없다. 주민의 사교와 휴식, 공동체 활성화 등의 목적으로만 쓰면 된다. 실제 이데일리와 함께 사고가 난 판교테크노밸리축제를 공동주최한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행사 전 성남시에 사용 신청을 냈다가 “설치 목적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는 회신만 받았다.

 3000명 미만 야외공연에 안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형 행사처럼 공연법을 적용하면 일반 안전에서부터 수도·전기·무대장치·방음시설까지 온갖 규제를 받아야 한다”며 “자칫 문화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어 공연계와 협의해 3000명 이상으로만 대상을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숭실대 이창우(소방방재학) 교수는 “일반광장 또는 공간이 넓지 않아 인원이 많이 모일 수 없을 것 같은 곳도 아이돌 그룹이 뜨면 인파가 갑자기 몰리면서 사고가 날 수 있다”며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는 안전에 관해서는 사전에 행사 성격을 살펴 적절한 규정을 지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불감증 여전=사고 다음날인 1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도 위험한 장면이 연출됐다. 행사 마지막 순서로 아이돌그룹 블락비가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이 일제히 무대를 향해 몰려들면서 행사장 주변 임시 철제펜스가 기울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날 콘서트에는 블락비를 비롯해 가수 김장훈·박상민, 힙합그룹 다이나믹듀오 등이 출연했고 시민 4000여 명이 공연을 지켜봤다. 그러나 안전관리요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기자가 무전기를 든 공연 진행요원에게 안전 요원이 어디 있는지 묻자 “나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체부가 만든 공연장 안전 매뉴얼에 따르면 이 같은 행사는 관객이 찾기 쉽도록 눈에 잘 띄는 표시나 복장을 한 안전관리요원을 사전에 공연장 취약요소에 배치해야 한다. 같은 날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9집 컴백 공연은 안전요원 300여 명을 배치하고 구급차 두 대를 대기시키는 등 안전에 신경을 썼다.

 스스로 안전을 지키려는 시민의식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2012년 10월 가수 싸이가 서울 시청광장에서 무료 공연을 했을 때는 시민들이 싸이를 보려고 지하철 출구 지붕에 올라가거나 심지어 방송사 중계차 위에 올라갔다. 공연 진행 측이 내려와달라고 요청했으나 듣지 않았다. 8만 명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무대 근처에선 앞뒤로 밀리고 엉키는 상황도 벌어졌다.

백성호·임명수·김효은·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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