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민은 진정한 소통을 원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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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 초 한 토론회에서 청와대 수석을 지낸 모 인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노무현 정부는 탈권위적인 정부라서 레임덕 현상이 비교적 늦게, 그리고 약하게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이 그 반대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정부의 위기는 국민과 정부 사이의 소통 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 당선자 시절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던 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한 것은 집권 초에 평검사와의 대화, MBC 토론 등 두세 번 정도로 기억된다. 어느 자리에서 대통령과 잘 통한다는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토론방식의 문제점을 일러줬더니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토론을 잘하는 분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토론을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며, 나아가 토론을 좋아하는 것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토론의 달인은 '듣기의 달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국민의 말을 듣기(경청)보다 오히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포용과 조정 능력을 상실했다. 소통에서 내용 못지않게 상징행위가 중요함을 모르는 것 같다.

조정자.포용자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이 토론자의 선봉에 서다 보니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 등이 정책 추진과 현안 발생시 이슈 파이팅(논쟁 주도)을 하기보다는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이는 갈등이 발생할 때 걸러내고 추스르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할 부처 장관이나 참모의 부재 현상을 지속시켜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설득의 실패는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감성의 차원에서 소통과 토론의 예의범절이 부재하거나 미숙하다. 둘째, 이성의 차원에서 논리적 비약과 모순을 보여주고 있거나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선공약인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를 놓고 벌인 지루한 논쟁에서 말 바꾸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문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셋째, 이념에 있어서 일관성이 부족하다. 대북 특검 수용과 대북 지원, 한.미 관계와 이라크 파병, 한.일 관계와 독도 문제, 경제 위기와 재벌정책 및 양극화 해법, 교육정책, 국민연금 논란, 부동산 정책의 혼선 등 그 예는 많다. 그러다 보니 어느 쪽으로부터도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채 좌우 협공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여정부가 여기서 실패로 끝나기에는 남은 임기가 너무 길다. 이제라도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고자 한다면 국민과의 소통을 복원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TV 토론장에 나와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들어 주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토론은 약자의 연대이자 강자와의 협상이라 하지 않던가.

대안은 간단하다. 대통령의 입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진행 사회자가 필요하다. 혼자서 다수를 직문직답으로 맞대결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미숙함을 반성하고 '1 대 다'의 구조 (평검사와의 대화)를 '다자 간' 구조로, 협공의 구조(MBC 토론)를 조정의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대통령은 말을 줄이고 좌우 토론자들의 논쟁을 들어본 뒤 그 핵심을 간파, 갈등을 조정하면서 자신의 정치철학과 개혁기조를 관철시키는 토론방식이 보충돼야 한다.

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달성한 것만으로는 이제 부족하다. 운동을 했다는 민주세력 내부가 과연 민주적 노하우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배우고자 하는 겸손이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미숙한 386이 민주세력 내부의 소통마저 간과함으로써 시민사회나 지지세력의 이탈을 초래했고, 노장의 경륜과의 소통마저 무시하고서 이념 차이도 아닌데 괜한 세대 간 갈등을 초래했다. 그러나 국민은 진정한 소통을 원하고 있다. 이제라도 대통령의 솔직함에 국민은 감동할 준비가 돼 있다.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