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씨 소설 『우리동네 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달의 소설중에는 이문구씨의 『우리동네 조씨』(세계의 문학 겨울호), 윤흥길씨의 『비늘』(실천문학), 이승우씨의『에리직톤의 초상』(한국문학), 이문열씨의 『금시조(금시조)』(현대문학)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수준작으로 지적됐다.
이문구씨의 『우리동네 조씨』는 도시에서만 볼수 있다고 생각했던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위화감이 농촌사회에서도 만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변모한 농촌의 한 단면이다. 주인공 조씨는 부인이 학교에 컬러TV를 선사하기 위한 계를 부인들이 나서서 모으는것을 보고 혀를 차지만 말릴수 없다. 조씨는 이문제로 이웃과도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면서 『왜 이렇게 농촌이 삭막해져 가는가』생각하게 된다. 이씨의 다른 『우리동네』 작품들이 농촌의 소외와 피폐를 다룬 것이라면 이작품은 농촌에 그나마 남아있던 조그마한 화목까지도 깨어지는 정신의 부패를 집어낸다.
윤흥길씨의 『비늘』은 외떨어진 고원마을을 배경으로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와 적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대장」이라는 거한은 절대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화자인 「나」는 「김대장」과 마을사람들을 모두 접촉하면서 마을사람들이「김대장」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그를 난폭하게 만들고 「김대장」은 또 자신에게 겉으로는 굽신거리며 속으로 경멸하는 마을사람들을 더욱 억누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소설은 폭력의 승리를 부정하면서 만약 폭력이 있다면 그것은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한다.
이승우씨의 『에리직톤의 초상』은 신과 인간과의 갈등을 그렸다. 신이 인간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파멸시키려하고 인간은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신에게 등을 돌리려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1인칭 소설이면서 철학도의 편지를 작품속의 또다른 l인칭 소설로 삽입하는 구성상의 특이함이 보인다. 신인의 작품으로 관념적이고 난해한 점도 있으나 주목되는 작품이다.
이문열씨의 『금시조』는 한 예술가의 생애를 통해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최상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의 허무함을 그리고 있다. 일생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면서 거기서 금시조의 모습을 본다는 결말이 암시적이면서도 감동을 준다.

<도움말 주신분="김윤식·김치수·권영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