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큰 잔치 4시간 … "얼쑤, 좋다" 서울 도심 들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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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에서 열린 대한민국국악제에서 여성 춤꾼들이 소고춤을 선보이고 있다. 국악 각 분야에서 300여 명이 출연했고 춤·소리·악기가 총동원된 최대규모의 국악 축제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기야 어허야. 망망헌 창해여 탕탕헌 물결이로구나-.”

 1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국립창극단의 남성 소리꾼 5명이 무대에 올라 ‘남도뱃노래’로 흥을 돋웠다. 무대는 평소 차가 다니는 2차선 길 위에 세웠다. 관객 500명도 길 위의 객석에 앉은 야외 국악 공연이었다.

 제33회 대한민국 국악제의 풍경이다. 총 4시간 동안 300여 명의 국악계 인사들이 무대에 오른 성대한 잔치였다. 한국국악협회(이사장 홍성덕)의 창악·기악·경기민요·시조 등 12개 분과 모두가 참여했다. 작은 북을 들고 추는 반고무(半鼓舞)로 시작해 남도·경기 민요, 태평소 시나위, 가곡, 설장고 공연으로 1부를 구성했다. 오후 6시에 시작한 2부 순서에선 광명 농악, 소고춤, 살풀이, 판소리 공연 등이 이어졌다.

 가야금 연주로 유명한 황병기 명인은 가을 저녁의 야외 무대를 위해 ‘침향무(沈香舞)’를 골랐다. 주위가 어둑해졌을 때쯤 명료하고 고즈넉한 가야금 소리가 퉁겨져나왔다. 김웅식 고수의 북소리가 넉넉히 그 소리를 받았다. ‘침향무’는 황 명인이 “신라의 불상을 떠올리며 쓴 작품이다. 1974년 작곡할 즈음에 신라인과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별빛 뿐이란 생각에 밤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소개했던 곡이다. 그런 만큼 이날 무대에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객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지나던 행인들이 관객이 됐고, 청중은 행인들이 오고 가면서 바뀌었다.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뒤쪽에 서서, 혹은 보도에 자리를 깔고 앉아 무대를 즐겼다. 길 양쪽 상점의 상인들도 청중이었다. 특히 곳곳에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미하일 페트로프는 “묵고 있는 호텔이 이 길에 있어 지나는 길이었는데 쉽게 들을 수 없는 한국 음악을 만나게 돼 신기하다”며 “느리고 독특한 선율엔 유럽의 음악과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가 설치된 길은 ‘국악로’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전통악기 상가, 국악 전수소, 한복집 등이 모여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사회를 맡은 소리꾼 남상일은 “조선시대 궁중음악이 종로를 중심으로 전승됐고, 국악로란 이름까지 붙은 곳에서 국악 축제를 열게 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한 순서가 끝날 때마다 청중을 향해 “얼씨구!”를 외쳤고, 청중은 “좋다!”로 화답하도록 했다. 가을 저녁이 깊도록 국악로엔 “좋다!”소리가 울려퍼졌다. 홍성덕 이사장은 “올해는 여느 해보다 규모도 크고 출연진도 화려했다”며 “동·서양인 할 것 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축제를 매년 성대하게 열 것”이라고 밝혔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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