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청약경쟁률 ‘139대 1’이 남긴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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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택시장에서 가장 달아오른 곳은 단연 위례신도시다.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하남시에 걸쳐 개발되는 2기 신도시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하나인 송파구가 포함돼 있고 강남권 주택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조성되는 곳이어서 ‘강남권 신도시’로 불린다. 애초 이름이 송파신도시였다가 성남과 하남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 공모를 거쳐 ‘울타리’란 뜻을 가진 위례로 바뀌었다.

위례에서 2006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분양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아파트 청약경쟁률인 1순위 평균 139대 1이 최근 나왔다. 8월 1층을 음식점 등으로 쓰는 점포겸용 단독주택 용지가 평균 390대 1, 최고 2746대 1의 신청 경쟁률을 기록한 곳도 이곳이다. 위례자이의 경쟁률에는 훌쩍 큰 주택시장 회복 기대감이 배여 있다. 인근에서 지난해 6월 분양된 래미안 위례의 1순위 경쟁률은 평균 27대 1이었다. 1년 4개월 새 경쟁률이 3배 넘게 뛰었다.

그 사이 지난해 8·29 대책, 올해 9·1 대책 등 정부의 강도 높은 주택경기 부양책이 있었다. 서울 아파트값은 올 상반기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 방침 발표 등으로 약세를 보였는데도 2% 올랐다. 지난달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가 8800여가구로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반짝 상승세였던 2009년 이후 가장 많은 9월 거래량이다.

올 들어 전매제한이 풀리면서 앞서 분양된 위례 아파트 분양권에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웃돈이 붙었다. 래미안 위례 청약 때 긴가민가하던 웃돈이 현실이 됐다. 위례자이 청약자들은 2~3년 뒤 입주할 무렵엔 이보다 더 많은 웃돈이 붙을 것이란 자신을 가졌다. 완공되기 한참 전인 착공시기에 미리 집을 파는 선분양 구조에서 가격 상승 기대감이 없으면 청약하기 힘들다.

주택시장의 훈풍이 강남권 신도시라는 위례의 상품가치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27대 1에서 139대 1로 청약경쟁률이 오른 만큼 시장 온도가 상승하고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1년 4개월 새 27대 1→139대 1. 언제든 주머니를 열 수 있는 대기수요가 많다는 것도 이번 위례자이 청약에서 확인됐다.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2년 이상인 1순위자 6만2670명이 위례자이에 신청했다. 당첨되면 청약일로부터 불과 2주 정도 뒤인 15~17일 1차 계약금 4000만원을, 한 달쯤 뒤인 11월 17일 2차로 4000만~1억2500만원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두 당첨될 경우 바로 동원할 수 있는 6조원 가량의 돈이 장롱에 쌓여 있는 셈이다. 바닥 수준의 저금리에서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 올 돈이 넉넉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 자리 숫자의 청약경쟁률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청약 과열” “투기”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위례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11년 12월 강남 3구가 마지막으로 해제되면서 투기과열지구는 현재 이름만 남아 있고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다.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고 청약경쟁이 치열한 지역을 대상으로 청약자격과 분양권 전매제한을 강화해 청약경쟁률을 누르는 것이다. 투기과열지구 용어가 보여주듯 그 바탕에는 청약경쟁률이 높은 주택의 신청자는 ‘투기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위례 청약자는 투기꾼인가. 이들은 내 집이 필요해서, 집을 갈아타려고 혹은 직접 거주할 생각 없이 분양권을 팔거나 시세차익을 노리고 청약했을 것이다. 집을 사용하면(사용가치) 건전한 실수요이고 살지 않고 팔면(교환가치) 가수요이자 시장을 흐리는 투기로 봐야 하나. 중국계 경제학자인 천즈우는 『자본의 전략』에서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투기’가 없으면 시장은 없고 주식이나 부동산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돈을 벌려는 목적의 투자가 없다면 시장이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강남권 주택수요 흡수·분산 대책 필요. 돈을 벌려는 수요에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뉘앙스가 짙은 투기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시장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한해 거래되는 분양권 건수는 주택 매매거래량의 30~40%에 이른다. 투기는 법 테두리 밖의 행위로 제한하고 그런 투기에 대해선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천정부지의 청약경쟁률은 불법이 아니고 부도덕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나친 쏠림이 ‘정상’은 아니다. 시장이 비정상화돼 있다는 뜻이다. 한군데로 쏠린 수요를 분산시켜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서울·수도권 분양시장은 1%대 99%의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강남권에선 1순위 수십 대 1의 경쟁률이 여사지만 다른 지역에선 아무런 청약자격 제한 없는 3순위까지 접수해도 모집가구수를 채우지 못하는 아파트가 적지 않다.

주체할 수 없는 강남권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재건축 등 강남권 내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 주거 선호지역 분포에서도 ‘1%대 99%’가 나타나지 않도록 강남권 이외 지역의 업그레이드도 수반돼야 한다. 그러잖아도 정부의 9·1 대책이 강남권 등 인기지역에 규제 완화 혜택을 몰아줘 지역간 불균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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