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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남과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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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민족은 본시 만주와 북한을 거쳐 남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북한은 한반도에 있어서 내외문화 접촉과 전파의 경로구실을 해왔었고, 특히 선사·원사시대의 유적·유물들이 적잖게 산재해 있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조의 유물은 보잘것없지만, 고구려의 고분을 비롯하여 수십만년전의 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의 유적 유물은 우리민족의 뿌리를 찾는 귀중한 자료이다.
삼국시대의 벽화고분만 하더라도 그동안 북한지역에서 51기가 확인되었는데 그중 절반이상이 해방후에 발견되었다. 그가운데 49년에 발굴된 안악3호분, 77년의 덕흥리고분 및 최근에 조사된 동명왕릉(패파리고분)등은 매우 주목되는 벽화들로 알려져있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유적도 일제때 함북 웅기유적부터 조사되기 시작했지만, 해방후의 조사성과에 의하여 구석기문화까지 확대 해명되었으며 거문모리유적의 인골은 네안데르탈인에 소급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궁금하고 절실한 북한의 고고자료는 그지역 특유의 고분벽화라든가 아득한 옛날의 석기·토기·소동기 등이다. 물론 남한지역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고 있으며 벽화고분이5, 6기 발견되었지만 그 맥을 짚어가자면 부득이 북으로 더듬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자료를 일본과 같은 제3국을 통해 겨우 얻어보는 실정이다.
그대신 북한에는 신라·백제의 미술품은 물론, 도자기와 회화등이 보기에 딱할이만큼 엉성하고빈약하다. 평양박물관의 도록을 보면 1개 대학박물관의 참고품 진열만도 못하다. 청자도 백자도 한국에서 나오는 도록에는 실리지못할 정도의 조악한 것들 뿐이며, 회도에 이르러서는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이른바 민화라고 얼컬어지는 책가도와 십장생도까지 수록할 정도이다. 심지어 경주 석굴암과 첨성대 다보탑등의 소규모 모형을 만들어서 도록을 꾸며야할 만큼 궁색한 짓을 하였다.
우리 정부의 남북문화재의 교류와 공동연구에 대한 끊임없는 제안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동족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자기혼자의 것인냥 폐쇄시킴으로써 남북이 서로 고립되어서는 안되기·때문이다. 세계의 정보는 바야흐로 컴퓨터에 의해 널리 바르게 교류되는 시대인데 유독 한반도에서만 우물안의 개구리식이 된대서야 안될 말이다.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북한측은 명쾌한 반응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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