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탈북민, 자유의사로 목적지 선택하게 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9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탈북민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목적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대표로 총회에 참석한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박 대통령 옆을 지나가고 있다. [뉴욕=박종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전시(戰時) 여성 성폭력”을 언급한 건 의외다. 물론 ‘일본’이나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다. 대신 분쟁지역의 여성·아동 문제를 언급하면서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느 시대, 어떤 지역을 막론하고 분명히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한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한 건 이번이 여덟 번째다. 하지만 우회적인 형태로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건 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연설문 작성 과정을 아는 정부 핵심 인사는 “일본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진 않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꼬집은 거나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의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고 말했다.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면서는 중국을 대상으로 우회적인 접근을 했다. 박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며 “탈북민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목적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엔 해당 기구와 관련 국가들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탈북자 북송을 원칙으로 하는 중국을 향해 에둘러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한국어로 진행된 15분간의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이처럼 일본 위안부, 북한 인권, 북한 핵 문제 등을 두루 거론했다.

 특히 제일 앞줄에 자리를 배정받은 북한 대표를 코앞에 두고 북한 인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23일 한·미·일 외교장관 등이 참석한 고위급 북한인권회의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인권 메커니즘에 전적으로 협력하라”고 촉구한 데 이은 연쇄 압박이다.

 연설문 중 가장 분량이 길었던 분야는 통일을 언급하면서다. 박 대통령은 “올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되는 해”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런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세계가 함께 나서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처음 밝힌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안도 다시 한 번 등장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으로 농촌 빈곤 퇴치에 기여한 새마을운동 모델이 지구촌에 확산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기조연설을 마친 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정상급 회의에 참석해 ‘외국인 테러 전투원 문제’에 대해 발언했다. 한국 대통령이 안보리에서 발언한 건 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23일 오후에는 유엔기후정상회의 ‘기후재정 세션’의 공동의장을 맡아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함께 회의를 공동으로 주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당초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이 주재한 ‘기후재정 세션’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베 총리가 불참하는 바람에 만남이 불발됐다고 청와대 측이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26일 오전 귀국한다. 박 대통령은 캐나다에 이어 유엔에서 일정이 너무 빡빡해 링거를 맞기도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뉴욕=신용호 기자, 정원엽 기자 nova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