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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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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통가구인 나전칠기 장은 주로 수납가구의 용도로서 우리 생활에 애호되고 있는 가구다.
칠기는 낙랑시대 부터였다고 하며 나전상감법은 중국의 당나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나전기법이 전래되기는 중국의 송나라 때라고 보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와서 나전칠기공예가 전성기를 이루어 고려청자와 함께 섬세하고 세련된 기법이 극치를 이루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려나전 함에 심취한 송나라 황비가 고려에 건함을 더 주문한 일이 있었는데 고려조정에서는 그 조그마한 물건을 대국에서 부탁한 것이 납득이 되지 앉아 나전함 의에도 배의 건함 수십 척을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만들어 놓은 배를 활용하기 위해 일본 정벌에 나셨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고려 나전칠기는 기법이 독창적이고 아름다왔다고 한다.
이 시대 나전칠기에 쓰인 문양은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연당초문양·국화문양 등이 주로 쓰였으며 중국미술의 과장된 표현과 기교와는 달리 순수하며 시적인 분위기를 갖고 섬세하고 우아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조시대에 와서는 숭유배불의 사장이 바탕이 되어 검소하고 단순한 미가 참조되고 보상화문양·십장생문양 등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었고 토속적이고 설화적인 요소를 띠었으나 기법은 이조 중기이후부터 점점 섬글고 섬세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순박한 솜씨로 간결하게 처리되어 서민화 되었고 고려시대에 비해 훨씬 퇴보된 느낌을 준다.
색채는 외부는 흑칠, 내부는 주칠을 주로 사용하였고 흥칠은 궁중용으로 왕비의 가구 외는 사용을 못하게 하였다.근대에 들어서는 기법과 문양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많은 변모를 보이고있다.
기법상으로는 일제시대의 영향이 미쳐 전통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기능공의 부족으로 기술적인 창의성이 없고 문양은 주로 옛것을 그대로 모방하여 시대의 흐름에 맞는 문양이 아직 정착화되지 못하고 현대 주거생활에 맞게 계획된 9자 12자 등의 옷장은 지나치게 대형화된 감이 있다.
또 자개가 너무 많이 붙여져 사치스럽고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해지고있다고 나전칠기는 본래 자개가 보석처럼 아름답게 돋보이게 하는 세련된 기법이 중요한데 자개의 면적이 지나치게 많고 현란하여 오히려 자개의 아름다움이 상실될 우려가 있다.
자개의 수요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양으로는 부족하여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종류는 멕시코패·대만패·호주패 대만패·진주패·흑진주패 등이 있고 수입가격은 상당히 고가라고 한다.
나전칠기 장은 제작과정이 복잡하고 공정이 오래 걸리며 비싼 수입자개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일반서민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고가품이 되어버렸다.
나전칠기의 본래의 기법을 살려 자개를 덜 붙이고도 아름답고 우아하며 또 값이 저렴하여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전통가구가 되었으면 한다. 김복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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