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대한민국은 출산 파업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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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2750년이면 한국이 사라진단다. 1.19명 출산율이 유지된다는 전제로 돌린 단순 통계 결과지만 흥행엔 성공했다. 일부 언론은 ‘대한민국이 소멸한다’는 기사를 쏟아냈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스 블로그에도 소개됐다. 출산 의무를 등한시하고 있는 한국 여성 중 한 명인 기자의 마음은 씁쓸했다. 호들갑을 떨 에너지를 출산·양육 인프라에 쏟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은 언감생심. 736년 후 배달의 민족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데, 죄인은 말이 없어야 한다지 않나.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 출근길에 마주친 한 워킹맘의 어깨다. 동년배로 보인 그는 직장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 주는 중이었다. 머리를 감을 시간은 용케 냈지만 말릴 시간까지는 없었던 듯 어깨 주변이 젖은 머리카락 때문에 축축했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옷이 젖은 것도 모르는 그의 가방은 업무 관련 서류로 묵직했다. 일순 그가 테레사 수녀보다 거룩해 보였다. 본지 워킹맘 칼럼에 나오는 출근 전쟁 얘기는 또 어떤가.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동시에 드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닌데.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욕심은 주변의 희생만 키울 터다. 이쯤 되면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거’라는 변명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지만 고군분투 워킹맘과 난임 부부들을 생각하면 해선 안 될 망언이다. 낳고는 싶다. 2750년의 한국도 걱정되지만 무엇보다 출산이란 가슴으로 이미 알고 있는 축복이니까. ‘전환점의 그녀(曲がり角の彼女)’라는 2005년 일본 드라마 대사를 빌린다. “일본이 사라질까 두려워 아이를 낳겠다는 여자는 없어. 출산은 부모와 아이의 인연이기에 소중한 거야.”

 지금 한국 여성들은 출산 거부 묵언 파업 중이다. 가담자 중 한 명으로서 감히 단언컨대 해답을 개인이 혼자서 찾는 건 무리다. 육아를 대신해달라고 응석 부리는 건 아니다. 축복이 짐으로 바뀌지 않도록 중지를 모아보자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 현재 가임기 여성의 대부분은 전업 주부 엄마에게서 길러졌다. 엄마는 나를 위해 항상 거기에 있어줬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 시간이 두 번째로 많다는 한국 아닌가. 736년 후 한국을 논하며 “한국 여자들은 왜 애를 안 낳는가”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엄마의 자격’이라는 무게에 눌린 오늘날 여성들의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