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수부인의 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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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에서의 몇 가지 볼일을 몰아가지고 10시쯤 안양 집을 나섰건만 몇 군데 전화를 해서 안부를 전하고 남대문·동대문·중부시장·동평화상가 까지를 돌고 난 후 느지막이 시장근처 싸구려 식당에서 국수로 점심까지 때우고 나니 하오 3시.
후즐근히 앉아있다 주섬주섬 몇 가지 쇼핑한 짐들을 챙겨 묶는데 얼핏' 식당으로 들어오는 푸른색 원피스 차림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다. 여학교 때의 친구 언니였다.
명문 K 여고와 S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l0여년 전 미국유학을 떠났던 그 깔끔하고 똑똑하던 언니 L. 그는 우리 5명 단짝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같은 한국인 유학생을 만나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너무 반가와 한바탕 상대의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를 묻다가 새삼 상대방의 모습을 살피게 되었다. L언니는 아직도 고운 기가 남아있는 얼굴이지만 눈가에는 잔주름이 잡혔고 주근깨 등 잡티가 늘었다. 양손에 들고 온 짐 또한 내 것 못지 않게 많았다.
『얘! 박봉의 대학훈장 마누라 노릇 하다보니 이렇게 싸구려 시장만 찾아다닌다. 하도 능력 있는 마누라들이 많은 세상이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쫓겨나겠더라. 세월과 사람에 닦이고 다듬어진 듯 학교시절 냉정하고 좀처럼 말이 없던 언니는 다변이 되었고 또 훈훈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중년여인으로 성숙해 있었다.
그날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 오늘의 내조론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미국에서 전공을 도서관학으로 바꾼 언니는 도미 1년만에 결혼을 하게되어 학생부부로 어렵게 공부를 했다. 석사가 끝나자 언니는 더 이상 공부할 것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여 돈을 벌며 박사과점을 밟고있는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결혼 후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4년여가 걸렸는데 그 동안 언니는 아이까지 낳아 기르면서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나는 꽤 내조를 한편이라고 스스로도 대견해했단다. 그런데 귀국해서 2, 3년 살다보니 그게 아니더라.』
언니의 남편이 봉직하고있는 대학 같은 과의 교수 부인들은 대부분이 부잣집 딸로 시집간 딸에게 고급아파트를 사 주는가하면 운전기사까지 딸린 자가용으로 사위를 출퇴근시키는 처가도 적지 않다는 컷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최근 귀국한 40의 노총각 교수도 대학을 갓 졸업한 부잣집 딸과 결혼, 주택문제·결혼문제를 일시에 해결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오히려 농담으로 내가 남편에게 부잣집 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한단다. 그러니 싸구려시장이라도 찾아다니며 피나게 절약이라도 해야지 않겠니?』
언니는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벼락부자가 좋아하는 사윗감으로 박사교수·의사사위를 얻으려면 병원 차려줄 지참금이 있어야하고 판·검사 사위를 보려면 이 모든 풍설이 거의 사실이란 말인가. 결혼 10여년 만에 작은 아파트한칸 마련한 기쁨에 이사 첫날 밤잠을 설쳤던 우리부부는 너무 순진한 걸까.

<안양시 비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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