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상 받은 한경애 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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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0년을 하루같이 정박아를 돌보는 일에 몸바쳐온 공로로 첫 번째 「청백리」상을 받은 국립 각심학원 사감(4급갑) 한경애씨(58·여)는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받게돼 오히려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겸손해했다. 자신보다도 함께 고생하는 보모 등 각심학원의 여러 종사자들에게 주는 격려의 뜻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여사가 각심학원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쟁 중인 50년말. 군의과(육군중령)이었던 남편 이석균 씨가 덕천 전투에서 전사하자 4살·1살 남매의 어머니였던 한씨는 각심학원 초대 원장으로 있던 시아버지 이문형씨(현재 85세)를 졸라 무보수 견습보모로 들어갔다.
두 자녀를 시댁에 말기고 각심학원에서 원아들과 생활을 함께했다.
『아무나 할 일이 못되는 일』 이라고 처음엔 말렸던 시아버지 이씨도 『무언가 보람있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싶다』 는 과부며느리의 뜻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40명 정박아들의 대소변을 가려주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외로움도 괴로움도 있었다.
70년4월 4급 갑으로 승진해 현재 2백50명 정박아 숙사의 사감 일을 맡고있다.
『아침6시 기상해서 밤9시 아이들이 취침을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하루가 빠듯한 일과입니다. 』 이렇게 30년을 살아왔다.
직장이자 집인 각심학원. 2백50명 원아들 가운데는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혼자서는 음식을 스스로 먹을 수 없는 중층의 장애어린이도 여럿. 흙이나 돌을 마구 주워 먹는가하면 자기 살을 물어뜯는 아이도 있고 발작을 일으키면 밤잠을 못 자고 소리지르며 몸을 뒤트는 어린이들도 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늘 신경은 깨어있어야 한다.
『이 아이들도 생명의 존귀함에는 정상아들과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누군가 돌보아야할 책임이 있어요.』 거제·부산으로 정박아들들 업고 유람하던 피난시절도 힘들었지만 가장 가슴아팠던 일은 그 동안 겪은 90여명 원아들의 죽음. 70년 이전의 일이긴 하나 대부분 전쟁고아로 들어온 원아들이 간질과 정신병 등의 합병증으로 죽어갈 때마다 『다음 세상에는 마음도 몸도 깨끗한 천사로 태어날 것』을 빌며 울었다.
기쁜 일은 『원아들이 성장해서 취직을 해 나갈 때, 드물기는 하지만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꾸려나갈 때』-. 현재 각심학원의 수위로 일하는 송명북씨(37)도 그의 중매로 결혼했다.
한씨의 요즘 걱정은 2년만 있으면 닥치는 정년. 시집에 맡겨 기른 남매는 훌륭히 성장, 모두 결혼했다. 대학강사인 아들은 『이제 힘든 일 그만두시라』며 모시겠다지만 한씨는 『힘이 있는 날까지 정박아들 곁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를 필요로 하는 것은 누구보다 버림받은 정박아들이기 때문이다. 【정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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