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정보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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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의 정보경쟁력을 꼽는 이들이 많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정보전쟁에서 CIA가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CIA는 이라크에 정보원을 심어두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한 정보를 면밀히 수집해왔다. 또 전쟁 선언 후에는 특수작전그룹(SOG)과 함께 제일 먼저 이라크에 침투해 이라크 지도부 제거작업을 수행했다.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추리소설 '신의 주먹'(the fist of God)은 1991년 걸프전 때 이런 정보전쟁을 수행한 영국 정보기관원의 역할을 자세히 묘사한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CIA와 영국의 MI-6는 이라크 지도부의 은신처를 파악한 후 첨단장비를 활용한 전격기습 등 '장막 뒤의 전쟁'을 진행했다. 이들의 직접적 살해 위협에 시달린 이라크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작전은 말 그대로 '공포와 전율'이었다.

하지만 미국 CIA가 완벽한 승리만을 거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선 CIA는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의 '비밀파일'을 입수하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후세인의 각종 통치자료와 이라크 내 각 정파 주요 인물들의 약점과 내부 갈등을 수집 정리해논 이 비밀파일은 전후 이라크 통치에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라고 한다. 처음엔 영국의 MI-6가 입수한 것으로 의심도 했지만 이들도 실패했고 현재로서는 후세인의 행방만큼이나 묘연하다고 한다.

현재 떠돌고 있는 유력한 추측은 러시아가 이미 이 자료를 입수했으며 이와 함께 이라크 지도부를 피신시켰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는 3월 16일자 기사를 통해 러시아 해외첩보국(SVR)과 군사정보국(GRU)이 후세인 파일을 넘겨받기 위해 설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2월에 있었던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의 바그다드 방문도 이와 연관이 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모두 추측일 뿐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몇개의 전선을 형성했다. 미국과 영국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 영토를 장악하는 데에선 압도적 승리를 얻었다.

하지만 보도전쟁에서는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이 미국의 FOX-TV, CNN 등을 압도했다. 여론과 명분전쟁에서는 반전(反戰)대열에 섰던 유럽국가들이 승리했고, 정보전쟁에서는 아직 승자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고 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