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의 직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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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이위요순 가이위걸주(요순 같은 성군도 될 수 있고 걸주 폭군도 있다.)>
김성일(1538∼1593)하면 우리는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파싸움에 급급하여 그릇된 귀국보고를 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참화를 앉아서 당하게된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당쟁을 부정적으로만 본 일부 사가의 편견임을 알아야한다. 그 당시 사신으로 갔던 이둘 중 경사 황윤길은 서인, 부사 김성일 과 서상관 허성은 동인이었는데 동인인 허성의 의견이 서인 황윤길과 일치한 것만 보아도 당쟁으로만 몰아붙이기에는 석연하지 않은 감이 있다.
이것은 당쟁의 결과라고 보는 것보다 대쪽같이 강직한 김성일의 성격에서 그 일면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일본사행기록인 『해사록』을 보면 그의 고고한 선비정신이 일본인을 야만시한 결과 일본을 과소 평가한 데서온 견해차이인 듯하다.
사실 그는 임금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직언을 하여 주위사람들이 송구할 정도였다. 김성일 이 정언 (사간원 정6품)으로 있을 때 경연석상에서 선조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김성일은 서슴없이 『요순 같은 성군도 될 수 있고, 걸주 같은 악한도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선조가 언짢은 기색으로 『요순과 걸주가 그렇게도 비슷한가?』하니, 『전하께서는 자질이 고명하시니 요순 같은 성군이 되기에 어렵지 않으나 간언을 거절하는 변통이 있으시니 이것이 걸주가 망한 원인이 아니겠습니까?』(선조수정실록)하여 선조의 안색을 변하게 만들었다.
공자도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얼굴빛을 경계하였으니 그늘의 세태에서 재음미할만한 명언이다. <박찬수 민족추진회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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