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레슬링」전 국가대표 장경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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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장경무(36)란 이름은 「스포츠·팬」들에게 잊혀진지 오래다.
그는 「아마·레슬링」자유형 「페더」급 「챔피언」으로 군림했고 66년 미국「토레도」세계 「아마·레슬링」선수권 대회에 장창선과 함께 출전, 4위를 차지했었다. 또 같은 해 제5의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고 68년 「멕시코·올림픽」에 출전한 대표선수라면 『그렇지』하고 새삼스럽게 기억할 수 있다.
이런 장경무씨가 숱한 「메달」과 「트로피」의 영광을 깨끗이 청산하고 이민의 길에 오른 것은 지난 72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건국 후 「올림픽」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정모가 등장, 경기에 패하자 「레슬링」과 손을 끊고 새로운 개척의 길을 해외에서 모색한 것이다.
착실한 기독교신자인 장경무씨는 국제대학생 선교회 체육부에 「레슬링」「코치」로 소속, 미국에서 선교사업을 펼치면서 외로움과 고달픔을 이겨 나갔다.
이 같은 세월이 3년. 마침내 「애리조나」주립대에 「레슬링」「코치」로 자리를 잡았다.
「코리아」대표선수였고 「토레도」세계선수권 대회 4위에 입상했다는 경력이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애리조나」주립대에 이어 「피닉스」대학에서도 「코치」로 일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다른 체육인들이 「스포츠」보다 사업으로 10여 년에 걸쳐 미국에 정착하는 것과는 달리 참으로 짧은 시일 안에 이룬 안정이었다.
그것도 대학「레슬링」「코치」라니-.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 생활근거를 마련한 장경무씨는 「레슬링」도장을 차려 여기에 그가 한국에서부터 탐닉했던 궁중무술을 원류로 한 국술까지 가르치기 시작했다.
장경무씨는 10년만에 「애리조나」주「피닉스」시의 유명한「코리언」으로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다. 특히 뒤늦게 시작한 국술은 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어서 동양의 신비한 무예를 처음 보는 미국인들은「원더풀」을 연발하며 매료당하고 말았다.
특히 지난해 11월「피닉스」시 시민「센터」광장에서 이틀 동안 열린 제4회 각국 민족 민속제(음악·미술·연극·「댄싱」·「스포츠」·무술)에선 장경무씨가 이끄는 국술원이 최고의 박수갈채를 받아 시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국술 시범 때에는 미국인 제자들이 태극기와 국술기를 들고 입장. 간단한 용어와 인사말을 모두 한국말로 복창함으로써 교포들은 물론 수만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TV에서도 시범을 중계했는데 그는 한국무술은 조국과 부모에 대한 충효사상과 존경·겸손·신의와 덕 있는 생활자세롤 근본정신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여 미국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남자대표 농구단이 「피닉스」시 이웃에 있는 「템프」시의 「애리조나」주립대와 경기를 갖기 위해 지난해 갔을 때 장경무씨는 그의 문하생 50여명과 함께 농구「코트」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열렬히 응원했다.
그는 지난 1월24일 「템프」시 「애리조나」주립대 앞에 또 하나의 도장을 개설했다. 아직 미혼인 장경무씨는 오는 4월께 한국에 나와 신부를 구해가겠다고 <이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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