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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로 가는 길-김인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백암온천을 아침에 떠났건만 대구에서「버스」를 갈아탔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날의 목적지는 광주였지만 영덕을 지나 안동으로 가던 길에 주왕산을 그냥 지나치기 싫어 진보에서 5시간 이상을 지체했기 때문이었다. 4년 전 겨울이었다.
어둠 속을 달리는 진주행 막「버스」안에서 나는 진주의 여관방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주「터미널」컴컴한 광장에 막 떠나려는「버스」1대가 있었다. 달려가 보니 구례행 이어서 나는 얼른 올라탔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쌍계사의 어느 따스하고 훈훈한 여관방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근20년 전부터 화개∼쌍계사사이의 벚꽃「터널」을 사랑하여 봄이면 항상 쌍계사를 찾아나서곤 했다. 물론 5km의 벚꽃「터널」은 꼭 걸어 들어갔고, 숙소는 어느 사이에 쌍계 별장으로 굳어져버렸다.
말이 별장이지 여관 정도지만 조용하고 가족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밤「버스」속에서 그 점을 생각했다.
김동리씨의 소설 『역마』의 무대로 알려진 화개장터에서「버스」를 내리니 10시가 지나있었다. 겨울밤은 깊어있었고 교통수단도 모두 끊겨 있었다. 이젠 별 수없이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하던 벚나무 가로수들은 이젠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서있었다. 나무 색깔이 유난히 검게 보임은 이제 막 달이 떠서 저기 섬진강 지류와 그 건너편의 눈 덮인 산들을 비추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이따금 도로가「커브」를 틀 때는 저 멀리 맞은 쪽에 높이 솟아있는 지리산의 주 능선이 번쩍이기도 했다. 눈보라가 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화개에서 2km지점인 개울 속 약수터를 눈여겨보았지만 도무지 찾기가 어려웠다. 온통 눈에 덮여있기 때문이었다. 의신과 칠불사 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너무 맑아 여름엔 희귀한 은어가 많이 잡히는 곳.
3km쯤 걸었을 때 개울 건너 산중턱에 있는 마을에서 인기척과 개 짖는 소리가 둘려왔으나 그것도 곧 끊겼다.
앞으로 2km. 사실 나는 약간은 겁먹고 있었다. 이런 때는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싫은 것. 어쩌면 굵은 벚나무 밑에 서있던 사람이 불쑥 나서지 앉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빨리 걷고 싶었으나 빙판이어서 뜻대로 안되었다. 몇 번을 쓰러졌는지 모른다. 참담한 모습으로 멀리 쌍계사의 불빛을 보았을 때는 전신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필자 여행가>

<코스>구례와 하동 중간에 있는 화개에서 하차, 걸어 들어가도 되고 화개-쌍계사의「버스」편이 수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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