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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도크」에 그득했던 원목더미 사라져|동명목재 도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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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3면

동명왕국을 이루었던 부산시 용당동 앞 바다.
통나무 원목이 떠 있던 저 목「도크」에 낚시꾼이 줄을 잇는다.
수출용 합판을 실어 나르던「컨테이너」차량행렬도, 원목을 자르는 톱니의 소음도 멎었다. 합판왕국 동명목재(창업 주 강석진·72)가 문을 닫은 지 7개월.
주인도 종업원도 뿔뿔이 흩어졌다. 텅 빈 공장건물과 굴뚝만 우뚝하다. 흥청대던 한때는 찾을 길이 없고 동네엔 전 셋방 사태가 났다.

<텅 빈 건물만 우뚝>
창업(25년)에서 도산(80년6월)까지 작년. 용당동에 자리잡은 지 17년 만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합판을 수출하기 시작해『3년 연속 수출 왕(68∼70년)』『개인소득세 전국1위』를 자랑했던 동명.
동명의 침몰은 수성의 어려움과 함께『기업이 망하면 기업주도 망한다」는 새로운 교훈을 남겼다.
이 합판왕국의 몰락은 합판 계의 불황, 무리한 기업확장, 경영진의 불화 등 이 불씨. 지난해 l백25억 원, 금년4월까지 60억 원 등 적자가 잇달아 헤어나기 힘든 늪으로 빠져든 것.

<고요 깃 든 사주별장>
뒤늦게『구제금융(2백50억 원)요청』『사주 개인재산 헌납』등 재기에 몸부림치다 지난5월7일 임시 휴업한 것이 영영 폐업의 길이 되고 말았다.
설마 하던 불안이 눈앞에 닥치자 3천여 명의 종업원들은 「정상조업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농성과 시위(7∼10일)를 했다. 그러나 사공을 잃은 배가 침몰할 것은 빤한 일-. 사주 강씨는 6월5일 종업원 해고통보로 백기를 들었다.
국보위가 사태수습에 나섰다. 사주 강씨와 그의 부인 고고화씨(70), 장남 강정남씨(42)의 개인재산도 헌납 받았다.
종업원 3천32명에게 29억1천9백 만원의 퇴직금이 지급됐다. 그중 7백72명에게는 일자리를 알선했다.
파산한 동명의 총 채권회수 액은 83억8천3백 만원. 우선 은행 빚 등 78억5천만원을 갚았다.
강씨 일가 3명의 미 담보재산 79억 원을 헌납 받아 개인주택을 빼고는 부산시 재산으로 넘겼다.
원목 등을 하역하던 부두시설 60만평은 감정원 감정 액으로 5백4억 원, 그중 49만평(4백84억 원)은 해운항만청에서, 나머지 11만평(20억 원)은 부산시가 사들이기로 했다.
사주이던 강씨는 평당감정가격 12만원을 30만원이상으로 실제감정하자고 주장했다. 그의 부인 고씨는 남은 재산으로 여자전문대학을 세우겠다고 희망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씨 일가의 나머지 재산으로 남천동 5천 평 대지에 4층 짜리 문화회관을 짓기로 했다. 강씨 부인의 이름을 따 고화 문화회관. 서울세종문화회관형으로 사업비 95억원 중 30억 원은 부산시의 지원이다.

<동민수도 부쩍 줄어>
강씨 일가족 3명에겐 현금 10억 원과 가옥2채씩 등 모두 16억 원의 재산이 생계를 위해 주어졌다.
강씨는 동명불원 옆 별장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다. 동명불원은 74년 강씨가 30억 원을 들여 짓다 호화분묘시비로 75년 부산시에 넘긴 개인사찰.
동명왕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지대에 위치해 전성기에는 하루 2백∼3백 명이 찾았으나 지금은 발길이 뜸해진「절간」이다.
동명의 도산으로 3백여 대리점과 2백여 납품업자도 휘청했다. 흥청대던 회사 앞 18개 식당 중 l2개가 문을 닫았다.
5개월간 l백11가구 5백34명의 동민이 줄었다. 용당 국민 교 학생도 1백여 명이나 학교를 옮겨갔다.
동명목재 정문 앞 금삼 차 집 주인 임지영자씨(42·여)는 앉을 자리 없이 붐비던 것이 하루 l∼2잔도 안 팔린다고 말했다.

<할말이야 많지만…>
진주식당 주인 이여기씨(31)도 종전 하루 10만원 매상에서 요즈음은 7천∼8천 원으로 줄었다고 했다.
한때 부산시에서 사들일 동명부지에 대단위 연탄공장을 세운다는 소문이나 주민들이 진정서를 내는 등 법석을 떨었다.
새마을지도자 장일수씨(43)등 주민들은 비슷한 업종의 공장이 다시 들어서야 생계가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1만평의 목재공장에는 경비원 30여명 등 잔무처리 요원들만 남았다. 회사 간부였던 한사람은 『할말이야 많지만 무슨 소용 있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회사정문에는 아직 간판만이 아쉬운 듯 남아 대기업의 몰락이 준 충격과 교훈을 토해 놓고 있었다.
『기업가는 사랑을, 근로자는 정성을.』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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