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교 위기는 일본에서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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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가운데)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역내 과제의 해결을 맡아야 할 특별한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 오른쪽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네피도=지지통신]

“한국과 일본 모두 어떤 관계를 구축할지 큰 그림을 보는 관점이 없다.”(히라이와 슌지 일본 간사이가쿠인대 교수)

 외교가 국가 간 소통이라면 한국 외교는 위기다. 일본과는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래 2년간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지난 3월 한·미·일 정상회담 제외).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끊긴 지 오래다. 6자회담도 2008년 12월이 마지막이다. 다행히 한·미, 한·중 관계가 좋지만 늘 위험한 줄타기다.

 

그래서 국내외 외교 전문가 30명(미·중·일 전문가 9명 포함)에게 대한민국 외교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한국 외교의 위기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온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하게 해소할 위협이라고도 했다. 특히 중·일 관계의 경우 지금보다 개선되든, 악화되든 모두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중·일 관계가 나빠질 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절반 가까운 14명이었다. 실제 일어날 가능성을 1점(가능성이 거의 없다)~10점(반드시 일어난다) 척도로 묻자 평균 5.5점이 나왔다. 전문가 중 12명은 중·일 관계 개선도 한국 외교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과 일본 간 관계 개선도 한국 외교의 위기요소라고 봤다. 현실화될 가능성도 평균 5.2점이나 됐다. 한국에 미칠 영향을 1점(매우 부정적)~10점(매우 긍정적) 척도로 묻자 평균 2.8점으로, 매우 부정적이었다.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위협은 현실화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9일(현지시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한 데 이어 10일 오후 북한 이수용 외무상과 북·일 외교장관회담을 열었다. 한국 외교부의 허를 찌른 만남이었다.

 전문가들이 한국 외교의 가장 큰 위협요인을 일본이라고 꼽은 건 한·일 관계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석희 교수는 “한·일 관계가 좋다면 중·일 관계가 어떻게 되든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안 좋은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한다면 한국 외교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역사나 안보문제 등 어느 한 부분이 관계 전체를 규정하도록 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프랭크 자누지 미국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은 “한·일 관계나 중·일 관계 등 동북아 정세는 서로가 윈-윈 하는 관계로 전개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미국과 중국도 경쟁할 땐 하지만 관계 개선을 위한 공식·비공식 대화통로를 항상 만들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유지혜·유성운·정원엽 기자, 베이징·도쿄·워싱턴=최형규·김현기·채병건 특파원, 권정연·차준호 대학생 인턴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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