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영국의 시인 「키플링」이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미국서 신문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썼다.
그 친구는 우송료를 절약하기 위해 광고「페이지」는 모두 찢어버리고 나머지만 보냈다.
이를 받아본「키플링」이 한다는 소리가, 『제일 재미있는데를 찢어버리다니! 기왕에 찢는다면 기사쪽을 버리고 광고면을 살릴걸 그랬다.』
나중에 이 얘기를 전해들은 친구는「키플링」이 그만큼 미국의 신문을 낮게 평가한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PR전문가들은 이「에피소드」를 「키플링」이 광고의 비중을 그만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로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같은 얘기도 풀이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사실의 객관적인 보도라는게 어려운 까닭도 이런데 있다.
지난 77년에 소련의 SST초음속 여객기가 정기비행을 시작했을 때였다.
「타스」통신의 보도는 다음과 같았다.
『비행기가 음속의 작을 언제 돌파했는지를 승객들은 전혀 알지 못했으며 「스튜어디스」가 들고 있던「코피」잔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러나 같은 비행기안에 타고 있던 UPI선배의 기자는 보도하기를 『2시간의 비행 중 기내의 소음은 대단했으며 둘 건너 좌석의 승객과 얘기를 나누는데도 소리를 질러야 했다.
특히 후미의 세향소쪽 소음은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둘 다 사실이다. 그러나 여객기의 생명은 뭣보다도 쾌적성과 안전성에 있다고 볼때 어느쪽이 더 사실에 찬 보도였느냐는 것은 새삼 가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늘 본보 창간15주년을 맞았다. 짧다면 짧고,길다면 긴 연륜이다. 그건 보기 나름이다.
엄청난 역사의 격낭과 함께 흘러간 15년이었다. 숨쉴 사이도 없이 줄달음쳐 온 그동안의 자취를 하나 하나 더듬어 볼 때 자랑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또 부끄럽기도 하다.
신문은 항상 새로와야 한다. 여기에 신문의 효력이 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선행을 타지도 앉고 언제나 시류에 앞장서서 독자를 위해 올바른 촉각노릇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신문은 뭣보다도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데 앞장서야한다. 신문의 권위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볼때 누구보다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게 「분수대」자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칼럼」의 정도를 제대로 걸어왔느냐에 대한 회의를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돌은 잔칫날이 아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새설계를 짜 나가는 전환점이다. 이렇게 새 날을 애독자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기약해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