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화물꼬 중요"…北주장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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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 북.미.중 3자접촉에 한국이 빠지게 된 것은 북한을 다자회담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노무현(盧武鉉)정부가 평화번영 정책을 내놓으면서 밝힌 '한국의 주도적 역할'등의 주장이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배제는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미국과의 양자 협의와 부시 행정부측이 제시한 다자협의 틀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북.미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과 일본.러시아를 제외함으로써 북한은 사실상의 다자회담 체제를 수용하는 데 따른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계산을 했고, 미국도 이를 용인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참여를 차단함으로써 북한은 미국과의 북핵 문제 논의를 우방인 중국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진행할 수 있는 유리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관련, 뉴욕 타임스는 16일 "일본과 한국의 관리들은 그들이 회담에서 배제된다는 데 대해 실망했으나 미 정부가 회담에 대해 매일 설명하고, 회담 전략 수립에 참여하게 될 것이란 약속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자는 "3자회담으로 출발한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물먹은 것으로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선(先) 대화 테이블 마련과 후(後) 다자논의로 가는 현실적인 선택이란 설명이다.

더욱이 윤영관(尹永寬)외교부 장관과 라종일(羅鍾一)안보보좌관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측의 중재 노력을 요청하는 등 다자회담 성사에 적극적인 외교노력을 기울였고, 3자체제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관련국들과 충분한 교감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험로를 걷게 될 북핵 논의에 한국이 언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실속있는 논의는 북.미.중 3자가 하고 한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한 보상을 논의하는 시점에 뛰어들어 경제적 부담에서만 주도적 역할을 하는 '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회담의 성격규정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질 소지가 있다. 우리 정부는 23일 접촉이 "예비회담"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다자대화의 1차 회담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해석차를 낳고 있다.

한국이 회담에서 배제된 데 대한 정치권의 논란이 격화될 경우 대북정책 추진을 둘러싼 여론 대립이 커질 수도 있다. 또 정부의 대북 접근이나 북한에 대한 지원과 관련한 국민 여론이 나빠질 경우 정부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북한이 3자 논의의 틀과 함께 이달 초 장관급회담 무산 이후 중단된 남북 당국 대화를 어떻게 끌고 갈지도 관심사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핵 문제 논의와 남북대화의 병행 추진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음달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에나 북한이 대남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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