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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세상서 경영수업 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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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당신에게 PC통신은 이제 진부한 단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단어에 자극받는다."

PC통신 개발주역들이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로 활짝 피어나고 있다.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 1990년대 말. 그때는 그야말로 PC통신의 '전성시대'였다.

유니텔.천리안 등으로 대표되는 PC통신 시대를 이끌었던 개발주역들은 이제 중견 벤처경영자들로 완연히 자리를 잡았다.종종 친목모임도 가지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좋았던 과거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지난 7일 최진완 제로마켓 대표 등 4명도 모처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만나 서로 사업 충고와 살아가는 얘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들은 PC통신에서 일하며 배웠던 기술과 가슴에 품었던 비전 그리고 도전정신이 벤처경영자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PC통신이라는 사이버 세상에 도전하고 개척해왔던 것처럼 지금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데 의기투합했다.

◇누가 벤처 CEO로 일하나=삼성SDS의 유니텔에서 일했던 인물들이 많다. NHN의 김범수 대표는 1992년 SDS에 입사해 당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관심이 높았던 PC통신 유니텔의 솔루션 개발을 담당했다.

그가 개발한 유니텔 전용 에뮬레이터 '유니윈 2.0' 등은 인터넷 대중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인터넷 종합쇼핑몰 제로마켓의 최진완 대표도 95년부터 99년까지 유니텔 개발팀에서 근무하며 PC통신 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제로마켓은 2000년 거래포털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이래 종합쇼핑몰의 모습을 갖추며 매년 1백% 이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다윈커뮤니케이션즈 이성균 사장은 유니텔 사업기획 및 마케팅 매니저 출신으로 89년 7월에 독립했다. 유니텔 출신들과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를 국내에 도입하여 당시 1백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모바일솔루션개발업체인 모바일리더의 정정기 대표도 유니텔 영업팀 출신이다.

데이콤의 천리안 출신으로는 서버호스팅업체인 호스텍글로벌의 박재천.이준필 공동대표가 있다. 박 대표는 천리안의 총괄 임원으로 천리안을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시켰으며, 이 대표는 천리안의 상품 기획과 대형가입자 유치 등을 담당했다.

하나포스닷컴의 안병균 사장은 85년 데이콤에 입사해 하나로통신으로 옮기기 전인 96년까지 천리안 기술팀장을 지냈다.

테라스테크놀로지의 어진선 사장은 데이콤 천리안에서 근무하며 국내 인터넷도입 초기부터 현재까지 인터넷메일메시징솔루션이라는 분야에서 일한다.

엔피아 윤기주 대표는 10년간 데이콤에 근무하며 천리안 네트워크 설계와 구축 업무를 담당했다.

◇PC통신 경험이 새 사업 밑거름=다윈 이 사장은 "유니텔에서 근무할 때의 경험이 벤처 창업의 기술적인 바탕이 됐다"면서 "PC통신 붐이 결국 인터넷 대중화에 큰 몫을 담당했고 그때 미래를 예측하고 시대의 변화를 이용하는 감각을 길렀다"고 말했다.

그는 "IT산업이 움을 틀 때는 기술적인 측면이 중시됐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감각"이라고 덧붙였다. 한글인터넷주소로 유명한 넷피아의 이판정 대표는 PC통신 하이텔 동호회 '21세기 프론티어'에서 활동하며 예비 창업자들과 활발하게 정보를 교류하기도 했다.

李 대표는 PC통신 활동 중 통신 접근 주소 체계가 통신사마다 다르게 돼 있고 복잡해 콘텐트 제공자(CP) 들이 자기 콘텐츠를 홍보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편리한 한글인터넷주소서비스를 개발하게 됐다.

야후코리아 이경한 상무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면서 "고객의 잠재적 욕구를 파악하고 온라인상에서 사업 모델로 연결시키는 발상은 PC통신에서 일할 때부터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교류도 활발하다.

최진완 대표는 "형식을 정하지 않더라도 수시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눈다"면서 "일정이 바빠 자주 못 만나게 되더라도 전화나 메일을 통해 서로의 근황도 묻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때때로 기발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엔피아의 윤기주 대표는 "예전에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면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기꺼이 서로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분야가 아니더라도 인사제도와 조직관리 등에서 이들과 나누는 정보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동섭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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