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배·천의 등에 고구려 불상의 특징 | 청원 석조삼존불 발굴을 보고 | 진홍섭<이대 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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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작년 4월 중원군 가금면 용전리에서 고구려시대 석비가 발견돼 학계의 적지 않은 관심을 모은바 있었다. 고구려시대 금석문이 매우 귀하고 더욱이 역사적 사실을 담은 금석문은 오직 압록강 너머의 광개토왕비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한에서의 발견은 전혀 기대한바 없어 비록 마손으로 비문을 정확히 판독할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담겨있는 점, 그리고 입비지점과의 관련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물이었다.
이번 다시 청원군 북일면 비중리에서 삼국시대의 양식이 농후하게 나타난 삼존석상을 비롯하여 석조여래상 1구와 석조광배 1좌등이 발견되었다.
그중 주목을 끈 것은 삼존석상으로서(이 석상은 작년 3월 문명대·이융조 양 교수에 의해 조사된 모양이나 이에 대한 보고문은 없다-「미술자료」 제24호 『고고미술』 「뉴스」란) 이 석상은 최소한 4편으로 절단되었고 그나마도 좌협시보살은 보이지 않는다. 현존하는 3편은 연결이 가능하므로 대체의 형식은 알 수 있으나 삼존의 하단부가 파손되고 본존의 안면은 완전히 절단되었으며 보살상의 얼굴은 마손이 매우 심해서 겨우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삼존상에 나타난 특색을 몇 가지 들면 첫째 세부양식을 알 수 없으나 윤곽으로 보아 상호 (얼굴모습)는 긴 편이다.
둘째 광배는 문양이 없이 동심원을 몇 줄 돌린 원형의 두광이어서 이러한 두광형식은 한두 예를 볼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보살상의 경우 원광배면에도 동심원이 있다.
셋째 본존 대좌 밑에는 형을 마련하고 화불 3구를 안치하고 (이 3구가 삼존의 형식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시 그 좌우에는 측면상의 사자를 배치했는데 그 꼬리가 위로 솟아 있다.
넷째 본존 좌우에는 원광 밑으로 촘촘히 화불 5구씩을 배열했는데 배열방법이 특이할 뿐 아니라 특히 상단중앙에 첨두형 돌기가 있는 장방형의 광배형식은 보기 드문 형식이다.
다섯째 보살상 전면에는 넓은 천의가 X자로 교차되었는데 좌우 양단은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모를 내면서 꺾여 올라가는 매우 경직한 형식일 뿐 아니라 천의나 상의의 융기된 주름이 매우 날카롭다.
이 특징들은 다른 불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 석상을 삼국기의 조성으로 추정하는 근거로서 이상과 같은 특징이 참고되어야 하겠으나 이외에도 본존이나 보살에 삼도가 없는 점, 본존상의 대좌가 방형인 점, 본존의 의단이 두 무릎 사이로 여러 단 V자형을 그리면서 늘어진 점, 보살상의 목걸이는 매우 짧고 세줄 짧은 수식이 달려있는 점, 화불 밑의 연화좌 연판의 형식 등을 들 수 있다.
문제는 이 석상이 삼국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소속국가가 어느 나라인가와 제작연대다. 석상 자체의 양식을 관찰하면 중국의 북위불상의 양식이 농후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고 본존화불의 연화좌 연판과 광배의 형식, 또는 협시보살상의 천의의 형식 등은 고구려 불상 양식과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 부근이 7세기 초반까지 고구려와 신라와의 세력각축장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아울러 멀지 않은 충주지방에서는 고구려 석비, 금동불 등이 발견되고 있는 점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겠고 인근지역인 조치원지방에서 7세기 중엽의 석상이 여러 구 발견된 사실도 참고해야 하겠다. 제작연대의 추정은 소속국가의 결정과도 상호 연관이 있겠으나 석상 자체의 양식을 근거로 서기 6백년께로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앞으로 더욱 세밀한 조사결과를 기다려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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