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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과 치열한 경쟁 끝에 서방선 처음|「유럽」전역 미술학도까지 몰려 초만원|칸딘스키전 등 유치할 길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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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예술지상주의를 개척했던「말레비치」작품이 그의 사후 45년만에 소련국경을 넘어 서독에서 전시, 미술계를 흥분시키고있다.「말레비치」의「뒤셀도르프」전은 특히 30년대 전후반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예술 지상주의를 살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흰색 화폭에 그려진 검은 원과 검은 십자가 그리고 검은 사각형이 그토록 대상적일 수 없어 전시장엔 서독인 뿐만 아니라「유럽」전역의 미술학도로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소련태생인「카시미르·말레비치」는 1915년께부터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함으로써 현대화에 가장 영향력을 남긴 화가로 이름이 높다.
특히 후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경향은 갈수록 예술지상주의에 심취, 30년께 초기경향 때도 몇 점의 작품을 만들어 놓고는 15년대의 연대표를 허위기재 할이 만큼 예술 지상주의만이 지상의 과제였던 것이다.
「뒤셀도르프」전에서「농장의 처녀들」(28∼32)「농부의 얼굴」(10)「말레비치부인」(33) 등이 특히 관심인 것도 철저히「선」과「각」으로만 구성된 예술 지상주의적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이번「말레비치」전은「말레비치」작품의 첫 번째 서방전시라는 점 이외에「칸딘스키」초기작품 등 소련 비장의 예술품이 계속 서방에 소개될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보다 의의가 높다.
「뒤셀도르프」에 전시중인 58점의「말레비치」작품은「모스크바」와「레닌그라드」에 소장된 2백여점중의 일부. 서독측은 주는 그림만 받아온 것인 만큼「말레비치」작품의 1백% 공개라고는 말할 수 없다. 더구나「말레비치」스스로「폴란드」와 독일을 거쳐 소련으로 귀환한 27년 이후의 작품이 대부분인 만큼 전동미술에서 예술지상주의로 변천하는 과정은 살필 길이 없다.
그렇다 해도 다른 서방각국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말레비치」전을 유치한 서독으로서는 크게 만족하고있다.「말레비치」전을 계기로「칸딘스키」초기작품 등 소련비장의 문화재가 서독을 통해 서방에 소개될 가능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말레비치」전시회는 앞으로「뒤셀도르프」전시 후「함부르크」와 「바덴바덴」에서 계속된다.<본=이근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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